마켓 광장에서 또 발을 밟힐 뻔하고, 오브바젠네크가 목에 걸리고, 성모마리아 성당의 나팔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린다면? 잠시 진정하세요! 크라쿠프를 그토록 매력적인 도시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이번 TOP10의 모든 항목은 '역사 속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발행된 글들을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전설적인 건국자 크라크의 도시, 크라쿠프에 대한 애정을 되살려 줄 10가지 흥미로운 역사 상식을 지금 만나보세요.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했을 이야기들
10. 근세 시대, 크라쿠프는 '두 번째 코린토스'였다
근세 시대 크라쿠프는 고대 코린토스에 비유될 만큼 방종한 도시였습니다. 도시 안에는 창관과 매춘부들이 손님을 찾아 나섰던 노천 장소들이 넘쳐났고, 매춘은 합법으로 인정받았으며 크라쿠프는 그로부터 실질적인 수익을 얻었습니다.
9. 크라쿠프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도시권을 얻었다
크라쿠프가 도시권을 획득한 시기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이릅니다. 도시화는 흔히 말하는 1257년의 문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30년은 더 앞선 시기에 이미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8. 6세기 동안 이어진 학생들의 '망나니' 일상
법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학생들은 무려 6세기 동안 크라쿠프 일상의 일부였습니다. 카지미에시 대왕이 학생들이 늘 술을 마시고 방탕하게 놀며 난동을 부릴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대학 설립을 한 번 더 신중하게 고민했을지도 모릅니다.
7. 총독부의 수도, 요새가 된 크라쿠프
크라쿠프는 나치 독일 총독부의 수도였고, 철수하던 독일군은 싸움 없이 도시를 내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점령군은 도시를 요새화해 몇 주간 버티며 붉은 군대의 공세를 저지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6. 14세기부터 시작된 상수도의 역사
크라쿠프 상수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상수도는 시내 우물 세 곳에 식수를 공급했으며, 크라쿠프 주민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물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5. 역사적인 시청이 없는 도시
자존심 있는 대부분의 도시들과 달리, 크라쿠프에는 옛 시청 건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시청 탑만이 유일하게 남았는데, 흥미롭게도 그 건물의 운명은 크라쿠프 주민들 스스로의 결정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4. 목숨을 건 영안실 직원들의 기록 보존
제2차 세계대전 중 크라쿠프 영안실 직원들은 목숨을 걸고 침략자의 수많은 희생자들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들의 헌신 덕분에 몬텔루피흐 거리 경찰 감옥과 포모란스카 거리 게슈타포 고문실에서 숨진 희생자들의 신원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3. 바르샤바 봉기 때 크라쿠프에서는?
바르샤바에서 봉기가 한창 진행되던 시절, 크라쿠프는 붉은 군대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크라코프 주민들은 두 가지 악 중 볼셰비키의 공세가 더 두려워 자발적으로 방벽 건설에 나섰습니다.
2. 점령의 테러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크라쿠프
겉모습과 달리 크라쿠프는 점령자의 테러 행위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독일군은 도시 안에서 집단 살해를 자행했고, 참혽게도 희생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도록 강요당했습니다.
1. 아무도 응하지 않은 나치의 징병
1944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치는 국방군과 함께 폴란드인 부대를 창설하기로 결정합니다. 동쪽에서 몰려오는 붉은 공세에 맞서 싸우기 위해 폴란드인들에게 입대를 호소했지만, 크라쿠프의 징병 사무소는 끝내 텅 빈 채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