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고대 일본의 두 문학적 거장, 무라사키 시키부와 세이 쇼나곤: 천 년을 넘어선 라이벌리

헤이안 시대의 두 별, 무라사키 시키부와 세이 쇼나곤

일본 문학사에서 헤이안 시대(794~1185)는 여성 작가들이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이룬 황금기로 꼽힙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의 라이벌이자 후대에 '일본의 공고라와 케베도'에 비견되는 두 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와 『마쿠라노소시(枕草子)』의 작가 세이 쇼나곤(청소낭, 淸少納言)입니다. 두 사람은 궁정이라는 좁은 무대에서 서로 다른 성격과 문체로 치열한 지적 대결을 펼쳤으며, 그 기록은 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무라사키 시키부: 『겐지 모노가타리』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는 973년경, 강력한 권세를 떨치던 후지와라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인 후지와라노 타메토키는 시인이자 학자로, 당시 남성에게만 허락되던 한문 고전 교육을 딸에게 베풀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문재가 뛰어나 10대 후반에 이미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장편 소설로 평가받는 『겐지 모노가타리』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54첩,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작품은 빛나는 황자 히카루 겐지의 연애담을 표면으로, 헤이안 궁정 사회의 화려함과 비극,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서양에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쓰기 500년 전에 이미 완성된 이 소설은 당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명성 덕분에 시키부는 쇼시(彰子) 황후의 궁정 여관(女官)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고대 일본의 두 문학적 거장, 무라사키 시키부와 세이 쇼나곤: 천 년을 넘어선 라이벌리

무라사키 시키부

세이 쇼나곤: 『마쿠라노소시』의 예리한 관찰자

반면 세이 쇼나곤의 생애는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정보는 대부분 그녀가 직접 쓴 『마쿠라노소시』와 라이벌 시키부의 비판에서 나옵니다. 『마쿠라노소시』는 헤이안 귀족들이 베개 곁에 두고 수시로 메모하던 습관에서 유래한 제목으로, 단순한 일기를 넘어 궁정 생활의 단상을 탁월한 문체와 사진 같은 정밀함으로 포착한 수필집입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매료되었던 이 작품은 당대 일본어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쇼나곤은 신과 인간, 사랑과 이별, 패션과 예절까지 모든 것을 소재로 삼았으며, 특유의 아이러니와 신랄함으로 당대 남녀의 풍속을 해부했습니다. 특히 연인들의 무례함을 꼬집는 대목("정사를 치른 후 코를 골며 자거나, 새벽에 몰래 떠나야 할 예의를 모르는 남자들")은 오늘날 읽어도 통쾌할 정도입니다. 25세에 이혼 후 데이시(정자, 定子) 황후의 궁정에 들어간 그녀는 자신의 글이 공개될 의도가 없다고 맹세했으나, 교토 귀족들의 애독서가 되며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고대 일본의 두 문학적 거장, 무라사키 시키부와 세이 쇼나곤: 천 년을 넘어선 라이벌리

세이 쇼나곤

시로 남은 두 사람의 목소리

산문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와카(和歌) 실력도 당대 최고였습니다. 『백인일수(百人一首)』에 나란히 실린 두 사람의 대표적인 시는 이중적 의미와 언어유희가 가득해 번역이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 정서만은 세르반테스의 언어로도 강렬하게 울립니다.

길에서 스친 덧없는 만남. 그가 그인지 알 수 없네. 한밤의 달이 구름에 가려졌으니.
(무라사키 시키부)
한밤중 수탉의 울음소리가 듣는 이를 속여도, 오사카의 문지기는 그렇게 쉽게 속지 않는다네.
(세이 쇼나곤)

대조되는 성격, 피할 수 없는 충돌

문학적 천재라는 공통점 외에 두 사람은 정반대였습니다. 시키부는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한문 실력은 당대 남성들을 압도했지만, 사교 모임을 피하고 책과 시 속에서 안식을 찾았습니다. 반면 쇼나곤은 자신의 천재성을 자각하고 당당히 뽐냈으며, 당대 최고 패션과 화장으로 치장하고 파티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예리한 관찰력과 독설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키부도 '죽은 모기'는 아니었습니다. 기회가 오면 어김없이 쇼나곤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은유적으로 비판하다가, 자신의 일기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에서는 대놓고 공격합니다. "허영심이 가득하다", "자신을 인재라 착각하나 실은 평범한 작가다", "한자를 남용해 보이려 하나 서예는 형편없다", "자신을 남보다 우월하다 여기는 자의 말로가 어떨지 모른다" 등 신랄한 비판이 이어집니다. 쇼나곤 역시 『마쿠라노소시』 행간에서 시키부를 향한 미묘한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정치적 라이벌리: 두 황후 사이의 대리전

두 사람의 갈등이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선 결정적 이유는 서로 적대하는 두 황후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헤이안 궁정의 복잡한 권력 다툼 속에서, 퇴위한 데이시 황후와 새롭게 책봉된 쇼시 황후의 세력 다툼이 격화되었습니다. 시키부는 쇼시 황후 진영의 '스타 작가'였고, 쇼나곤은 데이시 황후 진영의 '스타 작가'였습니다. 두 문인은 각 진영의 문화적 우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복도에서 스칠 때마다 불꽃이 튀었을 것입니다.

말년과 영원한 유산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삶을 세세히 기록한 듯하면서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당대 일기는 개인적 기록이라기보다 제3자에게 읽히기 위한 공적 문서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말년에는 출가하여 불교 비구니로 여생을 마친 것으로 전해지며, 교토의 서로 다른 곳에 묻혀 있습니다. 지금도 두 사람의 묘소에는 꽃이 끊이지 않지만, 두 무덤은 도시의 양끝에 자리해 있습니다. "일본은 귀신의 나라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말처럼, 천 년의 시공간을 넘어 두 라이벌의 영혼은 여전히 교토의 바람 속에 맴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후세에 남긴 빛

이 두 여성은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무명의 존재가 아니라,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난 문인으로 역사에 영원히 새겨졌습니다.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의 가사인 "천대만대(千代に八千代に)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구절처럼, 그들의 문학적 광채는 만 세대를 넘어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글: R. 이바르사발 (R. Ibarzabal)
해당 기사는 '사무라이 이야기(Historias de Samurai)' 블로그 운영자이자 일본사 전문 필진인 R. 이바르사발의 기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