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현실을 직시하자. 폴란드인의 유전자에는 검열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만큼 폴란드적인 것은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름다운 신화일 뿐이다. 폴란드에는 언론·표현의 자유라는 전통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폴란드에서 검열의 역사는 인쇄술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문화의 후원자이자 르네상스를 장려한 군주로 알려진 지그문트 1세(지그문트 스타리)는 금서들을 화형에 처했다. 그의 아들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는 왕실 부인 바르바라 라지비우프나를 비롯해 자신을 글로 비판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응징했다. 집권층의 방침에 맞지 않는 정보를 유포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시절이었다.

이후 군주들 역시 결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스타니스와프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 시대에는 바르샤바 시장 광장에서 산더미 같은 책들이 불태워졌고, 마지막 화형식은 1785년 열렸다.

민주주의자들의 본보기

분할 지배기에 검열은 오히려 더 강화되었고, 독립운동가들은 큰 희생을 치렀다. 이른바 '블로팅 페이퍼'라 불린 비밀 출판물을 만든 사람 중에는 훗날 국가원수가 된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와 대통령이 된 스타니스와프 보이치호프스키도 있었다. 이런 행위로 감옥에 갈 수도, 시베리아로 끌려갈 수도 있는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밀서 배포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 형식이자 가장 높은 애국심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현실을 직시하자. 폴란드인의 유전자에는 검열이 새겨져 있다

서적 화형은 독일만의 일이 아니었다. 폴란드에서도 수 세기 동안 행해졌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1918년 이후였다. 그런데 자유를 외치던 사람들이 권력을 잡자, 검열을 폐지하는 대신 그 도구를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차용하기 시작했다.

이론과 실제 사이

이론 자체는 훌륭했다. 1921년 헌법 제105조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당국의 사전 검열을 배제했다. 모든 국민은 법정에서 자신의 말을 변호할 각오만 있다면 무엇이든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일상의 현실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현실을 직시하자. 폴란드인의 유전자에는 검열이 새겨져 있다

1921년 3월 17일 헌법은 폴란드인의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민간 언론사는 호가 발행되기 전에 관할 관청에 통제본을 제출해야 했다. 이를 근거로 스타로스타(군수)나 검사는 해당 호의 '임시 압수'를 신청할 수 있었고, 독립된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거나 기각했다. 검열사 전문가 안제이 파츠코프스키 교수는 "법적 메커니즘 자체는 민주주의 기준에 부합했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단 하나였다. 경찰은 공식적인 판결을 기다리지 않았다. 인쇄된 물량은 즉시 압수되었다. 특히 일간지 발행인들에게 이는 막대한 재정적 손실을 의미했다. 몇 주 뒤 법원이 반품을 허용한다 해도 편집부는 어쩔 수 없었다. 인쇄비, 잃어버린 판매 수익, 독자들의 신뢰 상실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어떤 잡지는 수십 번, 심지어 수백 번 압수당하기도 했다. 파산 위협에 직면한 발행인들은 전술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생존의 기술… 그리고 순응주의

언론사들은 스스로 원고를 사전 승인받기 시작했다. 검열관이 특정 문단이나 기사를 거부하면 그 자리에는 흰 빈칸이 남았고, 호 자체는 그대로 인쇄되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소송이나 정치 스캔들이 한창일 때는 주요 잡지에서 컬럼과 페이지가 통째로 사라지기도 했다. 때로는 헤드라인조차 흰 빈칸으로 처리되어, 독자들은 당국이 유독 조심스러워진 이유를 짐작으로 추측해야 했다.

대개는 정치권의 다툼이 문제였지만, 유명 인사의 삶에서 나온 자극적인 이야기도 검열관의 신경을 건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통제 시스템 전체는 폴란드 언론계에 순응주의를 주입하는 지옥처럼 효과적인 교육 과정이었다.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발행부수가 큰 잡지들은 스스로에게 자기검열을 명했다. 그 결과물은 오늘날까지 전간기 폴란드의 실상을 왜곡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자. 폴란드인의 유전자에는 검열이 새겨져 있다

사회주의 계열지 '로보트니크'의 한 호에서 압수된 기사 자리에 남긴 흰 빈칸.

'일루스트로바니 쿠리에르 코드젠니', '즈엔니크 포즈난스키', 심지어 '익스프레스 포란니' 같은 타블로이드를 넘겨보면, 폴란드가 폐허가 된 나라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유일하게 올바른 정당—그것도 결함 없이 정직한 정치가들로 구성된 정당—이 구원해준 것처럼 보이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런 서사를 내세운 대가로 언론 회사의 수장들은 정부 광고, 관직, 심지어 선거 명단에 오를 자리까지 받았다. 그들은 빠르게 깨달았다. 자유로운 언론은 그저 수지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출처

이 글은 필자가 『황금기의 여인들』(Znak Horyzont, 2014), 『위선의 시대. 전간기 폴란드의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CiekawostkiHistoryczne.pl, 2015), 『제2공화국의 타락한 여인들』(Znak, 2013)을 집필하며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안제이 파츠코프스키의 발언은 『독립 폴란드 기억의 매듭』(Znak, 2014)에서 인용했다.

추천 글

이 칼럼은 『포커스 히스토리아』 최근 호(2/2016)에도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