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지중해 최동단에 위치한 작은 섬 카스텔로리조(Kastellorizo)는 지리적으로는 아나톨리아 해안과 가깝지만, 역사적으로 언제나 그리스를 조국으로 여겨 온 곳이었다. 그러나 이 섬이 그리스에 합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헤아릴 수 없이 길고 고통스러웠다.
이탈리아의 도데카네스 점령, 그러나 카스텔로리조는 예외
1911년 이탈리아와 오스만 제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다. 1912년 봄, 이탈리아군은 그리스계 도데카네스 제도 점령에 착수했다. 이탈리아군은 1912년 4월 29일 카스텔로리조에 도착했지만, 다른 섬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실질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점령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주민들이 이탈리아인들을 해방자로 여기며 점령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는 사실이다.
원로들의 탄원, 베니젤로스의 거부
1912년 11월 13일, 제1차 발칸 전쟁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섬의 원로들은 당시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Eleftherios Venizelos)에게 조국 그리스와의 통합을 요청하는 각서를 보냈다. 그러나 베니젤로스는 국제적 분쟁이 번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 요청을 거부했다.
드라구미스의 결단과 그리스 국기 게양
그럼에도 당시 외무성 수장 이온 드라구미스(Ion Dragoumis)는 람브로스 코로밀라스(Lambros Koromilas) 장관의 동의를 얻어 베니젤로스 몰래 크레타 출신 지휘관 다스칼라키스(Daskalakis)와 밀약을 맺었다. 다스칼라키스는 1913년 2월 말 병사 30명과 함께 섬에 상륙해 그리스 국기를 게양했다. 마침내 섬은 그리스 땅이 된 것이다.
베니젤로스의 강경 반응과 유혈 사태
그러나 국제적 문제를 우려한 베니젤로스는 극렬히 반발했다. 그는 드라구미스를 사실상 직위 해제하고, 그리스 분견대에 즉각적인 철수를 명령했다. 더 나아가 어떠한 지원도 보내기를 거부했으며, 아테네에서 간신히 그를 만날 수 있었던 섬 대표들에게는 즉시 섬으로 돌아가 행정 기구를 재건하고 터키 국기를 게양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카스텔로리조는 다시 홀로 남겨져 무방비 상태에 놓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터키군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섬에서는 학살과 방화, 약탈이 자행되었다.
반복된 좌절과 이탈리아령 편입
이후 그리스 해군 함대가 급히 섬으로 파견되었지만 곧바로 떠났다. 그리스 사령관이 섬에 배치되었으나, 섬이 그리스와의 통합을 공식 선언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그래야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던 것이다. 특히 오디세아스 오롤로가스(Odysseas Orologas) 사령관은 주민들에게 유폐당하는 등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한편 이 무렵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1915년 자이미스(Zaimis) 정부는 상륙 부대를 태운 '엘리(Elli)'호를 섬에 파견했지만, 12월 15일 배가 도착했을 때 마스트에 프랑스 국기가 휘날리고 있는 것을 보고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1921년, 프랑스 '동맹국'은 섬을 이탈리아에 넘겼고, 이탈리아는 카스텔로리조를 도데카네스 관할 행정 구역에 편입시켜 버렸다!
이렇게 카스텔로리조는 주민들의 뜻과 달리 수십 년간 그리스 밖에 머물러야 했다. 섬이 마침내 그리스에 영구히 합류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8년, 도데카네스 제도 전체가 그리스에 반환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