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피우수츠키가 노린 키예프 은행 강도: 거창한 구상은 왜 무산되었나

베즈다니에서 피우수츠키가 이끄는 전투대가 수십만 루블을 실은 열차를 습격한 사건은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었다. 그보다 훨씬 큰 계획이 먼저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1907년, 차르 정권에 맞선 혁명이 기울면서 사회주의 민병대는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그동안 진행된 작전이라고 해봤자 별볼일 없는 소규모 행동들이었다. 군(郡) 금고를 털거나, 기차 습격은 드물었고, 가장 흔한 표적은 주류 상점이었다. 이제 제대로 된 대형 작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피우수츠키와 동료들은 은행 강도를 결심했다. 게다가 그 대상은 멀리 떨어진 키예프의 은행이었다.

전투원들은 실로 호화로운 판을 준비했다. 표적은 국영 은행의 한 지점으로, 놀라운 규모의 예금이 쌓여 있다는 사실이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해당 시설이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철저히 경비되고 있었고, 주변 일대에는 경찰이 넘쳐났다는 점이다. 정면 공격은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훨씬 더 교묘한 방법이 필요했다.

잠입인가, 굴착인가?

치밀한 조사 끝에 은행 금고 바로 아래에 건물 전체를 난방하는 보일러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은행 직원으로 위장 잠입하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다.

전투원 중 한 명을 화부(火夫)로 취업시켜 버너를 들려주면, 다른 은행 직원들이 자리를 비우거나 방심하는 틈을 이용해 천천히 가치물 보관실로 통하는 천장 격자를 절단할 수 있었다. 나머지 팀원들은 최종적으로 그 틈으로 시설에 잠입하면 되는 것이다.

피우수츠키가 노린 키예프 은행 강도: 거창한 구상은 왜 무산되었나

왼쪽부터: 야드비가 쿠니츠카(결혼 전 성 에이스몬트), 유제프 피우수츠키, 마리아 피우수츠카(결혼 전 성 코플레프스카), 1904년 (카밀 야니츠키의 저서 『불굴의 숙녀들』에서 발췌)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사료들은 혁명가들이 결혼식 하객 행세를 하며 위장복을 입고 이미 열려 있는 금고에 몰래 들어가 그곳에 시한폭탄을 설치할 계획이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물론 '사무실이 비는 시간대'에 작업을 개시해 '금고 안의 현물을 처리할 저녁 시간 전체를 확보한다'는 구상이었다.

차선 계획은 모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은행 근처에 위치한 부동산을 매입한 뒤 금고까지 이어지는 갱도를 굴착한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 안 모두 막대한 노력과 신뢰할 수 있는 공작원 대규모 팀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점차 더 많은 전투원들이 키예프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공작원들의 계획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역사에서 지워진 프로젝트

은행 화부로 일하던 러시아인과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에게는 사직에 대한 상당한 보상이 제안되었지만, 그는 회피하고 망설이며 일을 미루기만 했다. 그와 합의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금고를 굴착하기 위한 거점 확보 역시 엄청난 난관에 부딪혔다. 목적에 적합한 부동산 중 하나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적어도 은밀하게, 민병대가 처분할 수 있는 자금 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오흐라나(러시아 제국의 비밀경찰)는 작전 참여자들을 끊임없이 뒤쫓고 있었다.

첫 번째 준비 책임자는 순식간에 체포되었다. 그 자리에 임명된 활동가마저 2주 만에 붙잡혔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작전은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은행 대신 열차가 새로운 표적으로 떠올랐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1908년 9월, 베즈다니에서 벌어진 유명한 열차 강탈 작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