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428년,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 타란토(타라스)에서 태어난 아르키타스(Archytas). 다른 사료들은 그의 출생연도를 기원전 435년, 431년, 심지어 410년로 기록하고 있지만, 마지막 연도는 신뢰하기 어렵다. 그는 피타고라스 학파 철학자, 정치가, 장군, 수학자, 발명가, 공학자로 활약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유명한 '비둘기'는 역사상 최초의 '드론'이라 할 만한 존재였으며, 투석기의 '발명'에도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글: 판텔리스 D. 카리카스(Pantelis D. Karykas)
철학자이자 장군, 수학자
아르키타스는 크로톤의 필롤라오스에게 배웠고, 스스로도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수학과 공학에 대한 깊은 애정은 그를 발견과 발명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그는 탁월한 정치가이자 장군이기도 했다. 사료에 따르면 그는 고향 타란토의 장군으로 무려 일곱 차례 선출되었으며, 전장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380년경부터 죽음(사료에 따라 기원전 355년, 350년 또는 347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사실상 도시의 통치자였으며, 지리학자 스트라본의 증언에 따르면 보병 3만 명과 기병 4천 명을 동원할 수 있는 지역 강국으로 타란토를 성장시켰다.
그는 공정한 통치자로서 도시의 균형과 평화를 유지했다. 항상 침착하고 절제된 그의 태도는 모범이 되었고, 연설의 많은 구절은 고대에 속담처럼 회자되었다. 화가 난 상태에서는 결코 누군가를 처벌하지 않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는 과학 논문들을 저술했으나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위대한 수학자였던 그는 유명한 '델로스 문제'(입방체의 부피 두 배 늘리기, 고대 3대 작도 문제 중 하나)를 해결했으며, 천문학·광학·음향학 분야에도 폭넓게 관심을 기울였다.
공학의 아버지, 목조 '비둘기'
아르키타스는 '공학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에 따르면 그는 최초로 역학과 수학을 체계적으로 결합한 인물이다. 또한 도르래의 발명자로 여겨지며, 투석기(카타풀트) 발명자 중 한 사람으로도 꼽힌다.
유명한 '비둘기'에 대해 로마의 저술가 아울루스 겔리우스는 더 오래된 자료들을 인용해, 아르키타스가 나무로 만든 비둘기 조형물을 제작했으며, 이것이 그가 발명한 압축 공기를 이용한 메커니즘—일종의 원시적 '제트' 추진 장치—으로 하늘을 날았다고 기록했다. 후대 로마 지식인들조차 그를 위대한 인물이자 과학자로 존경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서구에서 그의 명성은 르네상스를 거치며 변함없이 이어졌고,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심지어 한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아르키타스는 그의 조국 그리스보다 서구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달의 크레이터 하나와 소행성 하나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어 있다.
투석기의 탄생과 모티야 공방전
투석기의 발견, 아니 정확히는 발전에 대한 그의 기여를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기원전 397년, 시라쿠사이의 디오니시오스가 카르타고군을 상대로 투석기를 대규모로 효과적으로 처음 운용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시칠리아의 역사가 디오도로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리고 이때 시라쿠사이에서 투석기가 발명되었다. 각지의 최고 장인들이 한곳에 모였기 때문이다."
모티야(Motya)
기원전 4세기 초, 시칠리아의 그리스인들은 오랜 숙적 카르타고인들과 다시 한번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시라쿠사이의 참주 디오니시오스는 이번 전쟁을 위해 그리스군을 최대한 완벽하게 준비하고자 했다. 그런데 전통 무기 외에도 그의 기술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무기, 바로 투석기를 개발했다. 투석기는 적의 방패(펠타)마저 꿰뚫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공성 병기였다. 초기 형태는 대인 병기로서, 특히 밀집된 적진의 측면을 무너뜨리도록 설계되었다. 최초의 투석기들은 구조와 제작이 매우 단순했다.
이 무기는 재장전할 때, 어쩌면 발사할 때에도 조작자가 배에 기기를 받쳤기 때문에 '가스트라페테스(gastraphetes, 배꼽 활)'라 불렸다. 가스트라페테스는 사실상 중세의 석궁과 거의 흡사한 거대한 석궁에 불과했다. 궁수는 굵직한 화살을 빠른 속도로 발사해 강력한 관통력을 얻었고, 당시 기준으로 사거리 역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동시에 디오니시오스는 다리와 투석기를 갖춘 다층 공성탑과 함께 더 크고 강력한 전함인 4단 갤리선(쿼드리렘)과 5단 갤리선(킨퀘렘)의 건조를 명령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기원전 397년, 디오니시오스는 보병 8만, 기병 3천,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수백 대에 달하는 전쟁 기계를 이끌고 시칠리아 내 카르타고의 본거지 모티야로 진격했다. 그리스군은 성벽을 쌓으며 포위전을 시작했지만, 공사가 완료되기 전에 힐밀코(Himilco)가 이끄는 함선 100척의 카르타고 증원군이 도시에 도착했다.
그러나 디오니시오스는 배에 궁수와 투석병을 대거 태우고 투석기를 해안에 상륙시켰다. 투석기의 화살이 적진을 산산조각 내면서 카르타고군의 공격은 쉽게 격퇴되었다. 시칠리아의 디오도로스는 "이 화살은 큰 경악을 안겼다. 그것이 바로 그때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다"라고 회고했다.
예리한 가스트라페테스와 그것이 카르타고인들에게 준 충격은 그리스군에 승리를 안겨주었고, 힐밀코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디오니시오스는 성벽을 향해서도 투석기를, 그리고 6층짜리 공성탑을 동원했다. 마침내 그리스군의 기계들은 성벽에 돌파구를 내는 데 성공해 도시 안으로 진입했다. 수비군은 주민들과 함께 물러나 집들에 웅크렸지만, 밤샘 격전 끝에 도시는 함락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디오니시오스가 포로로 잡은 카르타고군 소속 그리스 용병들을 반역죄로 몰아 모두 십자가형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아르키타스'
2021년 키오스에서 열린 범군종 합동 훈련 '파르메니온 2021'에서, 그리스 최초의 수직 이착륙(VTOL) 고정익 드론 프로토타입 '아르키타스(Archytas)'가 국방차관 니코스 하르달리아스에게 공개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장견이자 발명가, '포병의 아버지'(투석기 개발자),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같은 이름의 인물에서 따온 이 드론은 EFA 그룹과 Ucandrone PC가 해군을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과 협력해 개발한 제품이다.
이 드론은 4개의 전동 프로펠러를 통해 수직으로 착륙하며, V자형 이중 수직 고정익과 항공 저항을 줄이는 랜딩 기어를 갖추고 있다.


현대 무인기 '아르키타스'

가스트라페테스(배꼽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