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에 빠진 그리스 혁명
1826년, 그리스 혁명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는 이집트군 사령관 이브라힘 파샤가 마을을 유린하며 진격했고, 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는 간신히 이를 저지하려 애쓰는 처지였다. 중앙그리스(루멜리)의 상황도 더욱 처참했다. 영웅적인 항전 끝에 메솔롱기가 함락되었고, 이제 오스만군 사령관 키우타치스(메흐메드 레시드 파샤)가 아테네마저 포위하고 있었다.
정규군과 민병대의 연합 작전
키우타치스에 맞서는 작전은 게릴라 지휘관 게오르기오스 카라이스카키스가 총괄했지만, 프랑스 출신 대령 샤를 파비에(카롤로스 파비에로스)가 이끄는 정규군 '타크티콘'이 지원하기로 결정되었다. 파비에는 보병 A·B·C 대대, 말이 없는 기병 중대(사도 중대), 70명 규모의 외국인 의용군 '필렐린' 중대, 그리고 경포 4문을 운용하는 포병 중대를 이끌고 출정했다.
A·B 대대는 완편 부대로 각 6개 중대, 총 720명씩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C 대대는 2개 중대 약 200명뿐이었다. 정규 부대들은 엘레우시스에서 카라이스카키스가 거느린 규율 없는 무장 민병대와 합류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포르투갈인 알메이다가 지휘하는 정규 기병대의 도착을 기다렸으나, 알메이다는 모리아(펠로폰네소스) 방면 작전에 투입된 탓에 끝내 오지 않았다.
비잔티오스 대위의 기록에 따르면 정규군은 약 1,850명(제복 보병 1,600명, 포병 80명, 독립 중대 병력 약 150명, 군악대 포함)이었다. 민병대 규모는 비잔티오스에 따르면 2,500명, 페라이보스의 기록으로는 약 4,000명에 달했다.
하이다리의 전개
연합군은 아이갈레오 산을 넘어 오늘날 하이다리의 팔라타키가 서 있는 자리에 야영을 치렀다. 카라이스카키스는 정원 담장을 따라 민병대를 배치했고, 헬리오티스와 노타라스 장군의 병력은 인근 언덕에 전개하여 정원에 진지를 구축한 병력의 우익을 엄호했다. 나머지 민병대(크리에조티스·세르비스 부대와 이오니아 제도 출신 에프타네소스 부대)는 정원의 좌측을 방어했다. 정규군은 정원과 그리스군 우익 사이에 위치하여, 좌측은 정원 진지에 우측은 총사령관 헬리오티스의 진지에 기대는 형태로 배치되었다.
첫 교전: 보병의 총검 돌격
다음 날 여명, 즉 1826년 8월 6일 아침 터키 기병들이 그리스 진지에 접근해 정찰을 시도했으나 사격을 받고 물러났다. 그러나 곧 강력한 터키 기병 부대가 그리스군의 우익, 특히 좌익을 집중 공격해왔다. 카라이스카키스와 파비에는 즉시 측면 강화에 나섰다. 필렐린 중대는 우익으로, 위험이 가장 컸던 좌익으로는 제1보병대대(A 대대)가 급파되었다.
A 대대의 지휘관인 프랑스인 로베르는 병력을 공격용 밀집대형(비잔티오스가 기록한 '팔란가 픽닌', 아마도 중대별 대형, 즉 정면 40명 × 종심 18명의 대형)으로 편성한 뒤, 수세에 머무르는 대신 과감한 총검 돌격을 명령했다!
A 대대는 군기를 펼치고 북소리에 맞춰 터키 기병대를 향해 돌진했고, 적을 부끄럽게 도주시켰다. 당시 보병이 활개한 야전에서 기병을 공격해 격파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그때까지 이런 공격은 주로 오스트리아군이 시도했으며, 늘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같은 시각 그리스 우익에서는 필렐린 부대가 터키 기병과 격렬히 교전하다 압박을 받자 일종의 방진(사각대형)을 이루어, 총검과 집중 사격으로 수배에 달하는 적을 막아냈다. 그러나 소수 부대인 탓에 궤멸할 위기에 처하자, 파비에는 B 대대 분견대를 지원으로 보냈다. 이들 역시 먼저 사격으로 적을 타격한 뒤 총검 돌격으로 터키군을 격퇴하며 승부를 마무리했다.
재공격과 정규군의 완승
이렇게 하이다리의 첫 교전은 정규군이 주도권을 잡은 가운데 끝났고, 카라이스카키스의 감탄마저 자아냈다. 그러나 터키군은 이번에는 보병·기병·포병을 총동원해 재차 공격해왔고, 역시 주공은 그리스 좌익에 집중되었다.
2:1 이상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터키군은 그리스 진지에 막대한 압박을 가했다. 파비에는 다시 정규군을 풀어들었다. A·B 대대는 촘촘한 돌격 대형을 이루고, 양 측면은 사도 중대와 필렐린 중대가 엄호했으며, 경포 4문의 화력 지원을 받으며 분당 120보의 행군 보조로 터키군을 향해 진격했다.
터키군을 향해 흔들림 없이 전진하는 정규군의 모습은, 터키 포격에 시달리다 한계에 몰려 있던 민병대들에게도 새 활력을 불어넣었다. A 대대는 기병의 호위를 받는 터키 포병 진지를 향해 공격을 계속했다. 포탄의 세례 속에 순간적으로 대형이 흐트러졌지만, 공격 보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A 대대는 터키군을 완전히 쓸어버리고 적 기병의 반격마저 격퇴했다. 정규군은 터키군을 아테네까지 밀어붙였다. 파비에는 그리스 전군에 의한 추격전 지속을 주장했으나, 카라이스카키스는 자신의 규율 없는 병사들이 터키 기병에 취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반대 입장을 취했고, 전투는 여기서 마무리되었다.
이것은 그리스인들에게 위대한 승리였으며, 특히 정규군이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다. 그 병사들은 무려 터키 기병마저 격파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1825년식 군복을 입은 그리스 정규군 병사. 경질 가죽으로 제작된 특징적인 투구를 쓰고 머스켓과 총검을 장비하고 있다. 디자인: 스텔리오스 니디오풀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