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제2군단 – 1946년: 그리스 육군 해체 음모와 그 진압

제2군단 – 1946년: 그리스 육군 해체 음모와 그 진압

1946~47년, 그리스 공산당(KKE)과 훗날 창설될 그리스 민주군(DSE) 지도부의 목표 중 하나는 '왕정파시스트 체제'가 군부의 잠식을 통해 내부에서부터 붕괴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중동에서 좌초되었던 움직임들과 유사한 구상이었다.

"파시스트 군대를 우리 편으로"

"…그러므로 그 시간은 곧 다가올 것이다… 파시스트 군대를 해체하거나, 아니면 아예 우리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후자가 더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이렇게 확언한 이는 KKE의 고위 간부이자 남그리스 총사령부(KGANE)를 이끈 '장군' 코스타스 카라기오르기스였다.

이러한 확신의 근거는 명확했다. 그리스 육군 내부에 이미 공산주의 핵심 세포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이 격변 속에서 재편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원이 그 대열에 스며들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적어도 제2군단 소속 부대들, 특히 제9보병사단 예하 제41·제42 보병여단과 제2사단 소속 제21보병대대(TxPZ)에서 공산주의 세포가 확인되었다.

KKE의 목표는 해당 부대 병력 가운데 최대한 많은 이들을 탈영시키거나 조직에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전쟁 전체의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을 판국이었다.

발각된 편지, 남겨진 의문

그러나 이 음모 활동은 일부 장교들의 눈에 띄었고, 이들은 즉시 상급 지휘부에 보고했다. 이에 제2군단은 대응에 나섰다.

1946년 6월 초, 음모에 가담했던 한 병사가 보낸 편지가 발각되었고, 그 안에는 임박한 봉기 계획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의문스러운 대목이 있다. 그 병사는 자신의 부모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군 우편물은 검열을 거치므로 결국 읽히고야 말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그저 경솔했던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그 편지는 군 내부의 공산주의 세포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된 것일까?

어느 쪽이든, 적어도 제41보병대대 안에는 조직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 수장은 훗날 DSE 기병대 지휘관 '스테포스 대위'로 이름난 스테파노스 마나카스였다.

6월 19~20일 밤의 봉기 계획

제41부대의 공산주의 세포는 여단이 트리칼라로 옮겨가기 전, 코자니 주둔 시절에 이미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

마나카스의 계획은 미리 정해둔 암호 구호에 맞춰 1946년 6월 19일 밤부터 20일 새벽 사이에 여단 안에서 공산주의 봉기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반란군은 규율을 지키던 장교와 병사들의 무장을 해제해 무력화하고, '인민 운동'에 '위험한' 존재로 판명된 이들은 처형할 예정이었다. 동시에 KKE에 우호적인 시민들과 무장 집단이 반란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여단의 무기를 탈취하는 것만으로도 반란군에게는 값진 전리품이 되었을 것이다. 계획상으로는 6월 20일 아침까지 도시 트리칼라마저 장악하고, 궁극적으로는 테살리아 일대에 '자유 지역'을 건설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그리스 육군의 공식 전사(戰史)에 따르면, 같은 날 밤 제42부대와 제21보병대대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벌어질 예정이었다. 만약 이 계획이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테살리아 전역이 단숨에 반란군의 손아귀에 넘어갔을 것이며, 역사의 흐름은 헤아릴 수 없이 달라졌을 것이다.

기습 진압과 마크로니소스의 그림자

그러나 음모의 실체를 파악한 제2군단은 과감하게 움직였다. 6월 16일, 기습 작전을 통해 핵심 세포들을 일거에 무력화했다.

음모에 직접 관여한 300명이 넘는 병사가 체포되었고, 용의자로 지목된 1,500명은 무장 해제되었다. 그러나 배후 인물인 마나카스만은 도주에 성공했다.

이후 그리스 육군의 다른 부대들에서도 취조와 추가 체포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반란 음모의 발각과 진압은 또 하나의 무거운 결과를 낳았다. 바로 마크로니소스 수용소의 설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