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세기 지중해, 비잔티움과 아랍의 대결
서기 873년에 벌어진 코린트 해전은 9세기 비잔티움 제국과 아랍 세력 사이에 반복된 수많은 충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해전은 당대 최고의 해군 사령관이었음에도 오늘날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잔티움 제독 니키타스 오리파스(Niketas Ooryphas)가 남긴 가장 인상적인 승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연대기 작가 테오파네스와 요안니스 스칠리체스의 기록에 따르면, 크레타의 아랍 에미레이트는 마케도니아 왕조 초대 황제 바실리우스 1세 통치 시기에 비잔티움에게 특히 위험한 적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신자 포티오스의 도발
크레타의 에미르 사이드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전직 그리스도교도이자 배신자인 포티오스(Photios)에게 최소 50척의 군선으로 구성된 강력한 함대를 이끌고 비잔티움 영토를 공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특히 용감하고 총명한 인물로 묘사되는 포티오스는 제국을 굴욕시키려는 야망을 품고 마르마라해(프로폰티스)까지 진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협을 빠져나가던 중, 그는 드룽가리오스(함대 사령관) 니키타스 오리파스가 지휘하는 비잔티움 함대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아랍 함대는 최소 20척의 배를 잃고 굴욕을 삼키며 크레타로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뒤, 포티오스는 복수심에 불타며 다시 나타났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연안의 유린
규모를 알 수 없는 아랍 함대는 873년 펠로폰네소스반도로 항해하여 연안을 잔혹하게 약탈하기 시작했고, 곳곳에 공포와 절망, 죽음을 퍼뜨렸습니다. 아랍군의 출현 소식을 접한 오리파스는 신속히 적을 향해 진격했습니다.
그가 보유한 선박의 정확한 숫자나 종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강풍을 등지고 항해한 비잔티움 제독은 코린트 동쪽 항구인 케크리에스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아랍 함대가 남쪽으로 내려가 메토니, 필로스, 파트라를 약탈한 뒤 코린트만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지협을 건넌 결단
만약 오리파스가 적의 흔적을 따라 펠로폰네소스반도를 돌아 항해했다면, 적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고, 실제로 찾아냈습니다. 반도를 우회하는 대신, 그는 배들을 코린트 지협의 육지로 끌어올려 건너편 코린티아 해역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유명한 '디올코스(diolkos)'라는 석재 운반로를 통해 행했던 바로 그 방식입니다. 당시 디올코스가 보존되어 있었는지, 오리파스가 정확히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과이며, 그 결과는 아랍 함대에 대한 완벽한 전술적 기습이었습니다.
결정적 승리와 처형
비잔티움 함대는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던 아랍군에게 기습적으로 덮쳐 적을 완파했습니다. 수많은 적선이 침몰했고, 배신자 포티오스를 포함해 수천 명이 살해되거나 포로로 잡혔습니다. 더 참혹한 운명은 자발적으로 아랍군에 협력했다가 붙잡힌 그리스도교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본보기로서 끔찍한 고문 끝에 처형당했습니다.
역사가들의 논쟁
다만 일부 현대 역사학자들은 이 해전의 양상과 시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해전을 서기 879년으로 추정하는 반면, 또 다른 학자들은 오리파스가 배를 지협에서 육상으로 운반했다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