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알렉산더 대왕의 실험적 팔랑크스… 창과 활을 섞은 혼합 진형

알렉산더 대왕의 실험적 팔랑크스… 창과 활을 섞은 혼합 진형

『일리아스』에서 영감을 얻은 혼합 진형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중장보병 부대가 경장보병의 지원 사격, 즉 "화력"에 의해 엄호받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묘사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일리아스』는 곧 "성경"과 같은 책이었기에, 이러한 전술 개념은 그의 군사적 상상력에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한편 동방에서는 중장보병과 궁수로 구성된 소규모 부대가 발전했으며, 특히 '스파라바라(sparabara)'형 진형이 주목할 만했습니다. 이 진형은 최전열의 병사들이 대형 방패와 창을 들어 방어선을 구축하고, 그 뒤에 위치한 병사들은 모두 활로 무장하여 화살을 쏟아내는 방식이었습니다.

256명 규모의 실험적 팔랑크스

동방의 진형에서 착안한 알렉산더는 실험적 팔랑크스(experimental phalanx)라는 새로운 편제를 구상했습니다. 256명으로 이루어진 각 연대는 16열의 종심으로 배치되었는데, 앞 3열의 병사들은 긴 창인 사리사(sarissa)로 무장하고, 그 다음 열의 병사들은 활로, 마지막 열은 다시 사리사로 무장하는 구조였습니다.

근접 무기와 원거리 무기의 결합

이 진형의 핵심 철학은 근접전 무기와 원거리 무기의 혼합에 있었습니다. 화살 세례가 적을 미리 약화시키고, 사리사 벽이 접근하는 적을 막아내는 이중 방어 체계를 갖춘 것입니다.

이러한 진형은 기병 돌격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적이었지만, 정예 중장보병을 상대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동방 정복을 위한 설계

이 진형은 명백히 동방의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오리엔트 세력은 전투에 쓸 만한 보병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이 진형이 쏟아낼 수 있는 집중적인 화살 공세를 버틸 만큼 충분한 갑옷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리사를 든 앞 3열은 가벼운 무장의 적 보병이 돌진해오는 충격을 견뎌낼 만큼 충분한 위력을 지녔습니다. 하물며 그 적들은 사리사에 닿기도 전에 이미 화살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을 터였습니다.

실전에 never 사용된 진형

흥미롭게도 알렉산더는 이 실험적 팔랑크스를 실제 전투에 단 한 번도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후계자들과 후대의 지배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이 혁신적인 혼합 진형은 이론상의 구상으로만 남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