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최초의 그리스 제국 아카이아…영국 땅까지 닿은 전사와 상인들

최초의 그리스 제국 아카이아…영국 땅까지 닿은 전사와 상인들

"아카이아의 아들들이여." 위대한 호메로스는 자신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이렇게 불렀다. 돌과 빛의 나라 그리스에서 출발해 신성한 일리오스, 프리아모스의 영광스러운 도시를 정복하기 위해 나선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 아카이아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아카이아인들은 에올리아 계통의 종족이었다. 학자들은 이 명칭이 에올리아 종족의 기원이 된 원시 그리스 종족들의 혼합을 가리킨다고 본다.

에피루스, 첫 번째 요람

에피루스 지역이 아카이아인들의 첫 번째 요람으로 여겨지며, 그들의 흔적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성역인 도도나와 연결된다. 일부 학자들은 아카이오스를 강과 바다의 인물로 묘사하기도 한다. 아카이아인들은 탁월한 전사였다. 그들은 말을 잘 다루었으며, 적어도 테살리아 평원으로 내려온 이후부터는 일찍이 말을 길들여 왔다.

동시에 아카이아인들은 해양 민족이기도 했다. 미케네 아크로폴리스의 A 무덤 원(기원전 1600~1500년경으로 추정)에서는 발트해 연안에서만 산출되는 전금(electrum) 구슬이 발견되었다.

미케네식 무기는 사실상 유럽 전역에서 발견되었다. 오늘날 독일의 포메라니아에서 덴마크의 윌란반도, 헝가리 평원, 체코, 루마니아, 알바니아, 심지어 영국 제도까지 미치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미케네인들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흑해에 도달했고, 그곳에서 귀금속과 곡물을 조달했다. 나아가 다뉴브강을 거슬러 올라가 중부 유럽의 심장부까지 항해해 들어갔다.

세력의 공고화와 확장

기원전 17세기부터 아카이아인들은 점차 그리스 전역으로 퍼져 나가 국가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미케네 세력이 강대해지고 아카이아인들이 크레테의 해상 왕국에 도전하기 시작하기까지는 약 2세기의 시간이 필요했다.

기원전 1400년경 아카이아인들은 본격적인 대규모 전투 없이도 크레테까지 세력을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의 신화 역시 에게해 판도의 이러한 변혁과 관련이 있다.

아카이아인들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항해에 능숙했다. 상인이자 전사로서 그들의 명성은 동지중해 분지 전역에 퍼져 있었다. 인접 민족들이 자신들의 분쟁에 아카이아 전사들을 고용하고 아카이아 상인들과 거래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남아 있다.

기원전 16세기 중반 이집트가 힉소스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울 때, 아카이아 병사들을, 어쩌면 아카이아 선박까지도 전쟁 수행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집트는 의미 있는 함대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권력 축, 테베와 미케네

아카이아 그리스는 정치적으로 각 지역의 아낙타(anakta, 왕)가 통치하는 여러 도시 국가로 조직되어 있었다. 기원전 14세기에는 테베와 미케네라는 두 개의 권력 축이 등장한다. 미케네의 아낙타가 테베의 경쟁자를 누르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투쟁이 필요했고, 마침내 기원전 13세기 중반 소왕국들이 모두 예속된 느슨한 형태의 '제국'이 수립된다.

전설적인 아가멤논은 아마도 최초의 그리스 '황제'였을 것이다. 그의 권력은 오늘날 좁은 그리스 영토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의 통치 아래에는 에게해의 대부분과 소아시아 내륙 일부가 들어 있었다.

히타이트 기록에 따르면 '밀라반다'(밀레토스)라는 나라는 아히야바(아카이아)의 통치자에게 속해 있었다. 실제로 히타이트 황제는 아히야바의 지도자 아타리시야스(아트레우스?)가 자신의 나라를 침공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항의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히타이트 기록은 아히야바 국가를 이집트, 아시리아, 하티(Hatti)와 함께, 즉 당대 최강국들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동맹과 적, 주변 세력과의 관계

반면 이집트와의 관계에서 아카이아인들은, 훗날 고전기 그리스인들처럼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집트는 그리스의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아카이아인들은 기원전 13세기까지 북방에서 위협을 받지 않았는데, 그때 비로소 트로이의 영향력이 트라키아와 동마케도니아까지 미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에피루스와 마케도니아에 살던 도리아인들은 그리스 종족이었고(그들의 시조는 아카이아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였다) 파이오니아인이라는 트라키아계 종족과 마찬가지로 위협이 되지 않았다. 동트라키아의 키코네스는 트로이와 동맹을 맺은 후에야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서방의 상황은 완전히 통제 아래에 있었다. 시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미노스 문명 시대부터 교역이 이루어졌고, 그 지역은 우호적인 땅으로 간주되며 그리스의 세력권 안에 들어 있었다.

당대 최강의 군사 기계

결국 미케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당시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 조직 중 하나를 갖추고 있었다. 투키디데스의 언급에 따르면 기원전 1200년경 트로이 원정에서 아카이아인들은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1,200척의 배를 동원할 수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훗날 플라타이아 전투에서도 거의 같은 규모의 병사를 모았지만, 이에 필적할 만한 규모의 함대는 역사상 단 한 번도 기록된 적이 없다.

최초의 그리스 제국 아카이아…영국 땅까지 닿은 전사와 상인들

미케네의 긴 검과 창을 재현한 모습.

최초의 그리스 제국 아카이아…영국 땅까지 닿은 전사와 상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