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후반, 전쟁의 문턱에 선 유럽
1930년대 후반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마지막 구간이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파시즘의 부상은 이미 누구의 눈에도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고, 그보다 작거나 덜 극단적인 운동들 역시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가 이끄는 '대천사 미카엘 군단'이 활동했다. 반유대주의를 내세운 이 폭력적인 파시스트 정당은 극우 운동의 가장 극단적인 변종 중 하나로 꼽힌다. 벨기에에서는 렉시즘(Rexism) 운동이 세력을 넓혔고, 오스트리아의 나치세는 수상 암살까지 감행할 만큼 과격해져 있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폭발적인 조직 확장
이탈리아의 파시즘 운동은 특히 탄탄한 기반을 다져가고 있었다. 파시스트당의 지역 정치 조직 수는 1920년 7월에는 겨우 108개에 불과했지만, 1921년 11월 국가파시스트당으로 공식 재편될 무렵에는 2,200개로 늘어났고, 활동 당원 수도 35만 명에 달했다. 불과 1년여 만에 이루어진 기하급수적인 팽창이었다.
'전쟁만이 고귀하다'는 파시즘의 이념
파시즘 이념은 태생부터 평화를 거부했다. 일찍이 1919년, 무솔리니는 자신의 강령 선언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파시즘은 평화주의를 배척한다. 평화주의란 투쟁의 포기를 숨기고 희생 앞에서 비겁하게 물러서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직 전쟁만이 인간의 모든 에너지를 최고도로 끌어올리며, 그것을 마주할 용기를 지닌 민족에게 고귀함의 낙인을 새겨준다."
폭력으로 포장된 권력 행진
선언은 곧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졌다. 1920년부터 1922년 사이 벌어진 정치적 충돌에서 약 2,500명이 목숨을 잃었고, 신문사와 정치 단체 사무실 수십 곳이 습격당해 파괴되었다.
1920년에는 파시스트 무리가 다민족 도시 트리에스테에 난입해 슬로베니아인들을 위협했으며, 이들은 해외 식민지 확보와 대규모 군대 건설을 요구하며 나아갔다. 결국 1922년 10월, 무솔리니는 로마 진군과 함께 권력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이로부터 불과 17년 뒤, 유럽 전체를 집어삼킨 대전쟁의 막이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