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드로니코스 4세 팔라이올로고스(Andronikos IV Palaiologos)는 비잔티움 제국의 최종적인 몰락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 황자이자 황제였다. 그는 그다지 카리스마 있는 군주가 아니었던 요안니스 5세 팔라이올로고스 황제의 장남이었다.
네 살에 공동황제가 된 황자
1348년에 태어난 안드로니코스는 겨우 네 살이던 1352년에 공동황제로 선포되었다. 1369년에는 아버지가 부재중인 동안 섭정직을 맡았는데, 이는 요안니스 5세가 튀르크에 대항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헝가리와 이탈리아로 떠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구원하지 않은 아들
헝가리로 향하던 길에 요안니스는 불가리아에서 억류되었다. 안드로니코스는 아버지의 석방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결국 사보이아 백작 아메데오 6세의 개입으로 아버지는 풀려날 수 있었다.
요안니스는 또한 비잔티움이 거액의 빚을 지고 있던 베네치아도 방문했다. 더 이상 돈이 없었던 요안니스는 빚을 탕감하고 전함 6척을 제공하는 대신 테네도스 섬을 할양하겠다고 베네치아 측에 제안했다. 제국이 이미 그토록 파탄에 이른 상태였다는 방증이었다.
베네치아인들은 이 제안에 동의했다. 그런데 황제의 협약을 이행하기를 거부한 사람은 바로 아들 안드로니코스였다. 결국 황제는 빚 때문에 베네치아인들에게 억류되었다! 안드로니코스는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버지의 석방 자금 마련마저 거부했다...
반역과 실명의 대가
다른 아들 마누일(훗날의 황제 마누일 2세)의 개입 덕분에야 베네치아인들은 설득당해 굴욕당한 황제를 석방해 주었다. 요안니스 5세는 1371년에야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올 수 있었고, 1373년에는 튀르크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는 굴욕까지 당했다. 안드로니코스는 이를 구실 삼아 술탄 무라트의 아들과 동맹을 맺고 아버지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두 황자는 모두 포획되어 눈을 뽑히는 형벌을 받았지만, 안드로니코스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인해 완전히 실명되지는 않았다. 안드로니코스는 1376년까지 포로로 갇혀 있다가 제노바인들의 도움으로 탈출해 튀르크 술탄 무라트에게 몸을 의탁했다.
튀르크 군대의 선두에서 입성하다
1366년 사보이아의 아메데오가 간신히 비잔티움을 위해 되찾았던 전략적 요충지 갈리폴리 반도를 무라트에게 넘겨주고, 테네도스 섬을 제노바인들에게 양도한 후, 어리석은 안드로니코스는 비잔티움의 폐허 위에서 황제가 되었으며 아버지와 동생 마누일을 유폐했다.
1376년, 안드로니코스는 튀르크 군대의 선두에 서서 콘스탄티노플에 '개선'하듯 입성했다. 그의 통치는 약 3년간 이어졌고, 요안니스와 마누일이 베네치아인들의 도움으로 탈출해 그를 폐위시키면서 막을 내렸다. 배신자 안드로니코스는 도시 맞은편 갈라타의 제노바인들 곳으로 피신했고, 그곳에 1381년까지 머물렀다.
용서가 부른 재앙
그러나 그는 모범적으로 처형되는 대신 용서를 받았다. 미하일 두카스에 따르면 여자에게만 관심이 있었다는 게으른 황제 요안니스 5세의 결정이었다. 요안니스는 심지어 안드로니코스에게 실리브리아를 개인 영지로 하사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 인물은 1385년에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그해 봄 사망하는 바람에 국가에 더 이상 해를 끼칠 시간은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아들 요안니스 7세 역시 아버지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 튀르크 술탄 바예지트의 지원을 받아 잠시 비잔티움 황좌에 올랐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