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550년, 비잔티움과 동고트 왕국 사이의 전쟁은 이탈리아에서 피비린내 나는 격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초기의 성공 이후, 게르만계 동고트족은 뛰어난 왕 토틸라(Totila)의 지휘 아래 다시 반격에 나섰고, 비잔티움군을 일부 연안 거점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으며 심지어 시칠리아까지 침공했다.
동고트 왕 토틸라는 무려 400척 규모의 함대를 조직해 바다 위에서 비잔티움의 제해권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해상을 통해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비잔티움 증원군의 상륙을 차단하려 했다.
동시에 토틸라는 비잔티움의 핵심 해군 기지였던 아코나(Ancona) 공성전을 개시했다. 그의 육군이 도시를 포위하는 동안, 47척의 고트 함선으로 구성된 해상 분견대가 도시를 바다 쪽에서 봉쇄했다. 또 다른 300척의 고트 함대는 이오니아 제도와 에피루스 해안을 따라 약탈에 나섰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한 라벤나 총독 발레리아누스(Valerianus)는 달마티아에 주둔 중이던 장군 요한네스에게 아코나 수비군 증원을 위해 긴급 출동할 것을 명령했다. 요한네스는 실제로 38척의 함선을 이끌고 포위된 도시로 질주했으며, 항해 도중 발레리아누스 휘하의 12척이 추가로 합류해 전력을 보강했다.
바다 위의 섬멸전
아코나 봉쇄에 참여했던 고트 함대가 양측의 운명을 가르는 격돌의 주인공이 되었다. 고트 제독 인둘푸스(Indulf)와 기발루스(Gibal)는 자신들이 보유한 47척으로 즉각 공격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양측 함대는 아코나 북쪽, 연안 마을 세니갈리아(Senigallia, 당시 세나 갈리카/Sena Gallica) 앞바다에서 마주쳤다.
고트 함대는 맹렬하지만 무질서하게 돌진했다. 제독과 선원 모두 바다라는 무대에 그리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고트 함선이 대형을 이탈했고, 완벽한 진영을 유지하며 항해하던 비잔티움 함선들을 향해 제멋대로 난입하기 시작했다.
흩어진 개별 고트 함선들은 비잔티움에게 손쉬운 표적이 되었고 곧바로 침몰했다. 고트 제독들은 재편대를 명령했지만, 선원들의 미숙함 탓에 오히려 고트 함선들끼리 서로 충돌하는 대혼란이 벌어졌다. 이런 혼란 속으로 숙련된 비잔티움 함대가 밀려들어와 고트 함선들을 하나씩 제압하고 불태우기 시작했다.
인둘푸스는 11척과 함께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지만, 아코나 근처 해안에 닿자마자 부하들과 함께 상륙해 자신들의 배를 불태워 버렸다. 그만큼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한편 기발루스는 침몰한 36척의 고트 함선에서 구조된 많은 병력과 함께 포로로 잡혔다. 비잔티움은 단 한 척의 배도 잃지 않고 승전보를 울리며 아코나에 입항했다.
패배 소식은 도시를 포위하던 고트 육군에도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포위망을 풀고 황급히 후퇴했다. 비잔티움의 이번 승리는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승리에 힘입어 이후 나르세스(Narses)가 지휘하는 대반격이 시작되었고, 고트족은 결국 최종 패배를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