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펠로폰네소스를 둘러싼 비잔틴과 라틴의 대결
1320년 9월 9일, 아르카디아 스코르타의 아기오스 게오르기오스 성에서 벌어진 전투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지배권을 놓고 싸운 비잔틴과 라틴 세력 간의 갈등 중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1261년 펠라고니아 전투 이후 비잔틴 제국은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이 장악한 펠로폰네소스에 교두보를 마련했고, 그 세력권은 점차 넓어져 갔습니다. 반면 라틴 아카이야 공국은 비잔틴의 압박에 더해 내부 파벌과 영주들 간의 갈등까지 겹치면서 정치적·군사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양측의 지휘관
1318년 공국을 통치하던 앙주 왕가는 프레데리코 트로지시오를 발리오(사령관)로 임명했습니다. 이에 맞서 미스트라스의 비잔틴 사령관 자리에는 황제 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의 조카인 안드로니코스 아산이 있었습니다. 아산은 적진의 약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비잔틴의 영향력을 끊임없이 확장하며 라틴측을 압박했습니다.
아기오스 게오르기오스 성 포위전
1320년 아산은 비잔틴 군대를 이끌고 아르카디아로 진격하여 스코르타의 견고한 요새인 아기오스 게오르기오스 성을 포위했습니다. 트로지시오는 즉시 포위망을 풀기 위해 병력을 규합했고, 올레네 주교와 함께 펠로폰네소스에 주둔 중이던 성요한 기사단 및 튜턴 기사단 일부에도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구원군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아산은 공성 작전을 더욱 강화했고, 마침내 9월 9일 성은 함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점에 라틴 군대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산은 성에 입성하면서 공국의 깃발을 그대로 내리지 말라고 명령하는 한편, 병력들에게는 공격 태세를 갖추게 했습니다.
완벽한 기습
라틴군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방심한 상태로 성에 접근했습니다. 하지만 성벽 가까이 다다른 순간 비잔틴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고, 그들의 군대는 문자 그대로 와해되어 버렸습니다. 기습을 당한 라틴군은 아연실색하여 도주했고, 비잔틴군은 자비 없이 추격하며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전투에서 튜턴 기사단장이 전사했으며, 공국의 대종마(그랜드 스퀴어)인 바르톨로메오 기지와 올레네 주교는 포로로 생포되었습니다.
전투의 결과와 영향
포로로 잡힌 기지는 콘스탄티노플로 압송되었습니다. 이 승리로 비잔틴은 카리타이나, 아코바, 폴리펭고스 성까지 차례로 함락시키며 아르카디아 고원 전체를 확보했고, 라틴 세력의 발길은 펠로폰네소스 북부와 서부로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로, 해방된 지역의 많은 주민들이 다시 정교회로 개종하거나 복귀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