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서기 254년, 테르모필레에서 고트족의 침공을 격퇴한 그리스인들

서기 254년, 테르모필레에서 고트족의 침공을 격퇴한 그리스인들

레오니다스 이후 다시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

테르모필레는 세계사에서 매우 무거운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그가 이끈 300명의 전사, 그리고 700명의 테스피아이 병사들이 보여준 영웅적인 저항은 오늘날까지 기념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전략적 요충지는 레오니다스의 희생 이전과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전장이 되었으며, 마지막 전투는 1941년까지 이어졌다.

혼란에 빠진 로마 제국

서기 3세기 로마 제국은 붕괴 직전처럼 보였다. 정치적 불안정과 외세의 야욕이 제국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군대는 황제를 옹립했고, 적들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침입했다.

서기 254년, 게르만계 고트족의 대군이 제국 영토를 침공해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까지 진격하며 약탈을 일삼았다. 고트족은 방어가 잘 갖춰지고 경비도 철저한 테살로니키를 공격했지만, 큰 피해를 입고 격퇴당했다.

이에 고트족은 남하를 계속해 그리스의 나머지 지역을 약탈하고 파괴하기로 결정했다. 남부 그리스에 닥친 위협은 실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당시 게르만족의 대군을 막아설 로마군은 그곳에 없었다. 결국 그리스인들이 스스로 주도권을 쥐었다.

그리스 민병대의 결성

아카이아 속주 총독의 공식 허가 아래, 아테네 출신의 필로스트라토스와 테베 출신의 덱시포스는 테르모필레 요새를 방어할 병력을 소집했다. 수 세기 동안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무기를 들어온 적 없는 그리스인들에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민병대가 조직되었다. 이들은 구할 수 있는 모든 무기로 무장했지만, 주로 창과 미늘창을 사용했다. 그리스인들은 테르모필레에 집결했고, 로마 프로콘술(총독) 마리아노스는 그들 앞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옛 영광을 상기시키며 연설했다.

고트족의 맹공과 격퇴

이후 그리스인들은 요새를 최선을 다해 보강하고 적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트족이 나타났다. 그들의 숫자는 많고 기세는 사나웠지만, 특별히 잘 조직된 군대는 아니었다. 고트족은 그리스의 방어선을 향해 분노처럼 맹공을 퍼부었으나, 공격할 때마다 격퇴되었고 전장에는 그들의 시신이 가득히 널렸다.

여러 차례 공격을 반복한 끝에 좌절한 고트족은 후퇴했고, 마침내 그리스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전투의 기록

이 전투에 대한 세부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알려진 내용은 역사가 덱시포스의 저작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는 같은 이름을 가진 장군이자 전투 참전자로 추정된다. 2010년에는 이 전투를 언급하는 그의 저작 단편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또한 8세기 비잔틴(동로마) 역사가 게오르기오스 싱켈로스도 이 전투를 기술했다. 한편 대학자이자 총대주교였던 포티오스는 덱시포스의 세 부작을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