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포카스: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릴 뻔한 폭군

플라비우스 포카스(Flavios Fokas)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특별한' 인물이었다. 하급 장교 신분으로 황제 마우리키우스에게 반란을 일으켜, 황제와 그의 온 가족을 몰살시킨 뒤 제위에 올랐다. 이후 그는 국가를 향한 파괴 작업을 시작했고, 다행히도 그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다뉴브 강변의 반란, 우연히 잡은 제위

포카스가 마우리키우스 황제에 맞서기 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는 6세기 중반, 아마도 트라키아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602년, 다뉴브 강 국경에 주둔하던 비잔틴 군대는 혹독한 원정과 급여 삭감에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포카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병사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해 연말, 포카스는 아무런 저항 없이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했다. 마우리키우스는 체포된 뒤 잔혹하게 처형되었고, 점차 전 황제의 가족들이 하나씩 살해되었다. 아들과 딸들의 배우자까지 예외는 아니었다.

내부에는 테러, 외부에는 무능

황실 일족을 몰살시켰음에도 포카스는 제위에서 결코 안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실재하든 상상 속이든 모든 적대 세력에 대해 전례 없는 테러의 물결을 퍼부었다. 그러나 국가의 외부 적들에 대해서는 훨씬 무력했다. 발칸 반도에서는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이, 동방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제국 영토를 유린하고 있었다.

603년, 페르시아는 소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을 정복했다. 이 위기 속에서 동방 총사령관 나르세스(Narses)는 반기를 들었지만, 포카스는 그에게 사면을 약속해 놓고 손에 넣자마자 산 채로 불속에 던져버렸다. 한편 페르시아군은 보스포루스 해협까지 진격해 왔다.

무능한 친인척 통치

가족 이외에는 누구도 믿지 않았던 포카스는 형제 도메니올로(Domengiolo)와 코메디올로(Comediolo), 그리고 조카(역시 도메니올로라 불린)를 최고 요직에 앉혔다. 그러나 이들은 적을 막아내는 데는 완전히 무능했으며, 오히려 백성들을 상대로는 매우 '유능'했다. 일명 '시기상조의 공작'이라 불리던 장군 보노수스(Vonosus)만 해도 예루살렘 지역에서만 반란 가담 시민 1만 명 이상을 학살했다.

무능하기 짝이 없던 포카스는 마우리키우스가 피눈물로 아껴 모아둔 제국의 재산을 자신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하는 자들에게 흩뿌려 버렸다. 심지어 로마 교황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에 대한 수위권(primacy)까지 공식 인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헤라클리우스의 반격

이러한 파괴 행위가 계속될 수는 없었다. 포카스의 사위인 장군 프리스쿠스(Priscus)를 필두로 한 비잔틴 귀족들은 아프리카 총독(exarch) 헤라클리우스에게 포카스 폭정 타도를 호소했다. 총독은 이 임무를 아들 헤라클리우스와 조카 니키타스에게 맡겼다. 헤라클리우스는 수도 원정을 직접 이끌었고, 니키타스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해방시켰다.

헤라클리우스는 610년 10월 초 수도에 도착했다. 포카스는 소수의 추종자들 외에는 모두에게 버려진 상태였다. 헤라클리우스 함대를 공격하려던 시도는 케라티오(Keratio) 해전에서 격퇴되었고, 며칠 뒤 헤라클리우스는 개선 행진을 벌이며 도시에 입성해 황제로 즉위했다.

응당한 최후, 그러나 남겨진 참담한 제국

포카스와 그의 친인척들은 응당한 대가를 치렀다. 그러나 그가 남겨둔 제국의 상태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제국을 최대한 회복하기 위해서는 긴 투쟁과 수많은 피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