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4년 키프로스 침공 당시 리비아는 터키를 지원했습니다.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터키군의 리비아 파병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거론했습니다. 양국의 '불변의 관계와 유대'를 부각하고, 터키가 리비아에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코스타스 베니젤로스 | 출처: 오피니언즈
에르도안의 발언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국무부 전문(電文)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터키 신문 '볼칸(Volkan)'에 실린 기사 역시 이를 뒷받침합니다.
미국 외교 전문에 기록된 카다피의 지원 내역
국무부 전문은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였던 프라하 주재 미국 대사관이 1974년 9월 9일(월) 오후 2시 20분에 작성한 문서로, 미국 외교관이 터키 동료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이 터키 외교관은 회담에서 1974년 여름 터키의 키프로스 침공 당시 카다피 정권이 제공한 실질적 지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터키 외교관에 따르면 앙카라는 우방국 여러 곳에 군수물자를 요청했고, 리비아가 연료·폭탄·항공기 부품을 제공하며 호응했습니다. 이 물자들은 모두 미국산으로, 트리폴리 동쪽 8km에 위치한 구 미군 기지인 휠러스(Wheelus) 기지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 기지는 1943년부터 1970년까지 미군 기지로 운영되었으며, 한때 1만 5천 명의 병력과 민간 인력이 주둔한 곳이었습니다.
해당 물자는 터키가 키프로스 침공에 사용한 장비와 호환되는 것이었습니다. 전문에 따르면 당시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물자 인도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카다피가 물자 제공을 결심한 배경에는 터키 육군사관학교에서 수학한 개인적 정서적 유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그리스 에블피돈 학교 졸업생이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터키 외교관의 진술에 따르면, 리비아는 연료와 폭탄, 터키 공군 항공기용 부품을 제공하며 군사작전을 지원했습니다. 부품은 구 미군 기지에서 나온 것으로, 그곳에는 터키 공군 깃발 아래 키프로스 침공에 투입된 것과 같은 기종의 항공기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란행 F-4 팬텀의 깜짝 '색 변경'
같은 전문에는 또 다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키프로스 침공 이틀 후인 7월 22일, 이란으로 인도될 예정이던 다수의 F-4 팬텀 II 전투기(미국산)가 경유지인 터키에 임시 착륙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체들의 이란 마크는 지워지고 터키 공군 마크로 교체되었다고 합니다.
이 상황은 터키 공군의 실제 전력에 대해 전혀 다른 그림을 갖고 있던 그리스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전문은 이 정보가 다른 출처로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라고 평가합니다.
또 하나의 증언
터키프로스 신문 '볼칸'에 비롤 에르탄이 기고하고 '필렐레프테로스'가 번역 재게재한(2011년 4월 12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1974년, '평화 작전' 며칠 후였다. 터키군은 섬에 성공적으로 상륙해 터키프로스 주민들을 구출했다. 그리스-터키 전쟁이 한순간에라도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터키군은 그런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무기가 심각하게 부족했다. 타너 보이콧은 NATO 소속 외교관이었다. 터키는 이란과 이라크에 무기를 요청했다. 이란은 먼저 방해하더니 가짜 물건 몇 가지를 보내왔다. 이라크는 우리가 원하는 무기를 보유하지 않았으며 리비아가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무부는 즉시 리비아와 접촉했다. 리비아 측은 카다피의 명령으로 폐쇄된 미국 무기 창고에 무기와 물자가 넉넉히 있으며 이를 보내줄 수 있다고 통보해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와 물자를 가득 실은 4대의 항공기가 터키에 착륙했다. 당시 총리는 에체비트, 국방장관은 하산 에사트 이식이었다."
"이식은 보이콧에게 전화해 카다피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겠다고 밝히면서, 그가 리비아로 가서 추가 무기를 요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젊은 외교관은 이미 받은 무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물었고, 장관은 긍정했으며 보이콧은 리비아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리비아 참모총장을 만나 무기 대금을 지불하고 싶으며 동시에 신규 무기 구매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카다피의 답변은 이랬다. '당신들에게서 돈은 받지 않는다. 창고에 있는 모든 무기와 물자를 보내주마.'"
"외교관을 동행한 터키 장교들은 기지로 가서 필요한 물자를 골랐다. 물자는 DC9기 4대에 적재되어 터키로 보내졌다."
"카다피와의 또 다른 일화도 있다. 카다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간신히 바이칼(에체비트의 후계자)을 그에게 인도할 수 있었다. 리비아 지도자는 아첨을 시작하며 터키인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터키 대표단에게 며칠간 리비아에 머물며 자신이 접대하겠다며 다음 일정을 약속했다. 이 자리에서 바이칼은 카다피에게 섬에서 벌어진 작전에 대해 설명했다."
"리비아 지도자가 물었다. '그런데 왜 섬 전체를 점령하지 않았나?'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스가 감히 움직이려 든다면, 우리의 모든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어 그는 바이칼에게 리비아 병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키프로스 문제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바이칼의 답변은 '영광이지만 비행기를 놓치게 됩니다'였다. 결국 그들은 카다피가 자신의 전용기를 내어주겠다 하자 머물기로 했다. 그렇다, 카다피는 터키에 다른 어느 나라도 해준 적 없는 것을 제공한 것이다."
카다피와 그리스·키프로스의 관계
'BH매거진'(2014년 6월 29일자 '카다피와 그리스인들') 보도에 따르면, 무아마르 카다피가 처음 그리스와 연결된 것은 196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당시 공식 기록 없이 리비아 출신의 인상적이고 야망 있는 청년이 아테네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증언에 따르면 그는 1965년 학번으로 에블피돈 학교를 졸업했으며 눈부신 운동 능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그리스와 에블피돈 학교를 떠난 뒤 카다는 훗날 고위 장교가 된 일부 그리스인들, 즉 군사정권과 연관된 인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쌓았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1973년 11월 9일 카다피가 마카리오스 대통령과 가진 회담이다. 공개적인 토론 형식이었으며 회의록이 남아 있다('키신저의 비밀 파일', 미하일리스 이그나티우·코스타스 베니젤로스 저). 대화 내용은 미국 측에 유출되었고, 미국은 마카리오스에게 크게 분노했다.
카다피의 개인 승인을 거친 뒤 마카리오스의 최종 서명까지 마친 이 회의록은 1974년 3월 13일 낮 12시 30분 키프로스 외무부에 접수되었으며, '엄중 기밀'로 분류되었다. 공개된 회의록('키신저의 비밀 파일')의 내용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