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히시아스 전투(기원전 669년): 페이돈의 아르고스 호플리테스, 스파르타를 격파하다

히시아스 전투(기원전 669년): 페이돈의 아르고스 호플리테스, 스파르타를 격파하다

잊혀진 전투, 히시아스

기원전 669년(일부 학설에 따르면 668년), 아르골리스 지방의 히시아스에서 아르고스인과 스파르타인이 충돌했다. 이른바 '히시아스 전투'는 오늘날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리스 세계의 정치적·특히 군사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대한 사건이었다.

파우사니아스가 기록한 전투의 흔적

여행가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히시아스는 아르고스와 스파르타 영토의 경계 근처, 테게아 동쪽에 자리했으며 오늘날의 아클라도캄포스로 비정된다. 파우사니아스는 저서 『아르카디아』에서 이 전투를 언급하며, 페이돈이 이끄는 아르고스군이 스파르타군을 격파했다고 기록했다.

"이곳은 히시아스 전투에서 라케다이모니아인을 격파한 아르고스인들의 합동 묘지이다. 전투는 제27회 올림피아드 4년째 해, 아테네에서 페시스트라토스가 아르콘으로 임명될 무렵 벌어졌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한때 도시였던 히시아스의 폐허가 보이는데, 바로 그곳에서 라케다이모니아인이 패배했다."

이 외에 이 전투에 대한 별도의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비밀 병기' 아르골리스 방패와 팔랑크스

그러나 고대부터 아르고스의 승리 원인은 그들이 처음으로 선보인 팔랑크스 전술, 즉 '비밀 병기'라 불린 방패 호플론에 기반한 전술 덕분이라 믿어졌다. 호플리테스라는 병과 명칭 역시 이 방패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방패가 '아르골리스 방패'로 불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아르골리스 방패의 평균 직경은 90cm였다. 전통에 따르면 팔랑크스 자체와 그 대형을 발명한 인물이 바로 헤라클레이데스 왕조 출신의 아르고스 왕 페이돈이었기 때문이다.

수수께끼의 군주 페이돈

페이돈은 오늘날까지도 미스터리에 싸인 인물로,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다. 아마도 테메노스 가문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왕이 존재했을 것이며, 그중 연장자는 기원전 9세기에 재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재위기였던 기원전 7세기 전반, 아르고스는 그리스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페이돈은 에기나를 자신의 세력권에 넣었고, 그리스 최초의 화폐로 꼽히는 유명한 '거북이 은화'를 주조했다.

군사술 혁명의 시작

패배한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 각 도시들은 곧바로 팔랑크스 대형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그리스 군사술의 대혁명이 완성된 것이다. 히시아스의 승리는 단순한 일전의 승부를 넘어, 이후 고전기 그리스 전쟁 양상을 지배하게 될 호플리테스 팔랑크스 시대의 막을 연 결정적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