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을 읽은 전략가, 테미스토클레스
페르시아와의 결전지로 살라미스를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현지 기후 조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곳을 골랐던 것이다. 아테네 과학원 대기물리·기후학 연구센터가 크리스토스 제레포스(Christos Zerefos) 교수의 주도로 진행한 새로운 연구가 국제 과학 저널 애트머스피어(Atmosphere)에 발표되며 이 사실이 입증됐다.
올해 9월은 살라미스 해전 2500주기를 맞는 의미 있는 시기다. 기원전 480년 9월 말, 소수 병력으로도 뛰어난 전술을 구사한 그리스 함대는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의 지휘 아래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승리 중 하나를 거두었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위대한 지도자의 영감 넘치는 전략은 고대 그리스인과 테미스토클레스 본인이 살라미스 해협에 부는 바람 등 기후 조건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하루 주기의 변화에 맞춰 활용하도록 작전을 설계했다는 데 크게 기반하고 있다.
밤의 북서풍과 낮의 해풍, '집게'처럼 포위하다
과학적 분석 결과, 밤새 부는 북서풍과 오전 10시 이후 불어오는 해풍(sea breeze)이 결합해 하루가 지나면서 페르시아 함대를 살라미스에 가둬버리는 일종의 '집게(pincer)' 형태의 바람을 만들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해전이 벌어진 해역의 바람 장에 대한 기후학적 분석은 해당 지역 기상 관측소의 측정 자료와 1960~2019년 기간의 ERA5 및 WRF 기후·기상 모델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됐으며, 여기에 헤로도토스의 『역사』,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 등 고대 문헌의 기록도 함께 참고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늘날 이 지역에 나타나는 기후 조건은 2500년 전과 매우 유사하다. 따뜻한 계절 에게해에서 대체로 북쪽 방향에서 부는 멜테미(meltemi) 바람의 주된 원인은 인도 반도 광역 지대 상공에서 형성되는 열저기압, 즉 몰순 저기압과 여름철 발칸반도 및 중부 유럽을 덮는 고기압의 결합이다.
이러한 조합은 에게해에서 강화된 북류를 만들어내는데, 고대에는 이를 '에티시아이(etisiai)', 즉 '매년 반복되는 바람'이라 불렀다. 이 기후 조건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서 『기상학(Meteorologica)』에서 처음으로 기술한 바 있다. 한편 9월에는 바람이 약해지면서 해풍과 같은 국지적 순환계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스 함대의 후퇴는 '미끼'였다
그리스인들은 현지 기후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이에 맞춰 작전 계획을 조율했다. 페르시아 함대는 밤사이 아티카 연안(암피알리–페라마)에 전투 대형을 갖췄다. 그런데 날이 밝자 그리스 배들은 페르시아측이 예상했던 것처럼 도망치는 대신, 살라미스 방면에 전투 대형을 이루고 당당히 나타났다.
페르시아 함대가 공격적으로 다가오자 그리스 배들은 오히려 거꾸로 움직이며 대형을 유지한 채 살라미스 연안으로 노를 저어 후퇴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이 기동은 테미스토클레스 전략의 일부로, 페르시아 함대를 해협 깊숙이 끌어들이고 결전을 늦춰 바람이 바뀌기를 기다리려는 의도였다. 실제로 오전 10시가 넘자 바람이 남서풍(해풍)으로 바뀌었고, 그제야 그리스 함대의 반격이 시작됐다.
좁은 수로와 해풍이 만든 압도적 승리
해풍과 좁은 수로의 결합은 페르시아 함대의 대형을 무너뜨렸다. 선체가 높은 페르시아 배들은 바람과 파도에 옆으로 밀려 조종이 어려워졌고, 그리스 삼단노선(trireme)의 충각에 쉽게 격침되는 표적이 되었다. 게다가 강한 남동풍 때문에 페르시아 함대는 돛을 올려 사로니코스 만의 넓은 바다로 빠져나가 그곳에서 결전을 벌일 수조차 없었다.
결국 페르시아 함대의 상당 부분이 침몰했고, 남은 배들은 저녁 무렵 바람이 하루 주기를 마치고 다시 북서풍으로 돌아섰을 때 팔리론 만으로 탈출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서풍 '제피로스(Zephyros)'가 페르시아 함대의 잔해를 오늘날 아기오스 코스마스 인근 해역까지 운반했으며, 이것이 지중해에서 페르시아 세력의 종언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이번 연구에는 크리스토스 제레포스 외에 아테네 과학원 연구진인 스타브로스 솔로모스, 요안니스 카프소메나키스, 크리스토스 레파피, 그리고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교 드미트리스 멜라스 교수가 참여했다. 연구는 마리오풀리오-카나기니오 환경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출처: AP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