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공군은 발칸 전쟁 직전에 창설되어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1914년부터는 육군 항공대와 해군 항공대, 두 개 부문으로 나뉘어 운영되었으며, '공군'이라는 명칭은 관례상 사용된 것이다.
육군 항공의 발전
발칸 전쟁 이후에도 군사 항공의 발전은 계속되었다. 1913년 8월 16일, 테살로니키가 '항공중대'의 본부로 지정되었으며, 이 부대는 공병대 소속으로 제3군단 사령관의 지휘를 받았다. 같은 해 12월 23일부터 항공중대는 디미트리오스 캄페로스 대위를 지휘관으로 하여 군무성 산하로 편입되었고, 본부는 레베트 비행장(오늘날 에프카르피아)에 두었다.
1915년 10월, 부대는 '육군 항공대(AUS)'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그리스가 초기에 중립을 유지하면서 정치적 위기가 이어졌고, 결국 협상국군의 그리스 개입으로 AUS는 플로리나의 아민타이오, 이후 남부 그리스로 후퇴하며 사실상 붕괴되었다.
1917년 6월 그리스의 공식 참전은 공군 활동의 전환점이 되었다. 프랑스의 드네느 소령과, 항공사 출신으로 훗날 항공부 장관이 된 알렉산드로스 잔나스 제독의 협조 아래 공군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지원과 체계 구축
프랑스는 테살로니키 지역에서 8개의 비행장과 전진기지 공장을 건설하며 상당한 활동을 벌였다. 최초의 항공사와 정비사 양성은 1917년 9월 4일 세데스 비행장에서 프랑스군의 지휘 아래 시작되었다. 1917년 11월 AUS는 테살로니키로 복귀했고, 프랑스에 의한 장교 교육이 완료된 후 1918년, AUS는 그리스 육군의 다른 병과들과 동등한 독립 항공군단으로 개편되었다.
그리스 비행대대의 편성과 작전
첫 번째 그리스 비행대대는 제532 정찰 비행대대였다. 1917년 12월 10일부터 악시우폴리 근처 고르고피(악시오스 강 유역)에서 도랑 AR.1 12기와 브레게 14A2/B2를 운용하며 활동했다. 초기에는 프랑스인과 그리스인이 혼합된 인력으로 구성되었으나, 점차 1918년 9월까지 전원 그리스 항공사로 교체되었다.
이어서 제531 추격 비행대대가 1918년 3월 13일 편성되어 니우포르 24bis와 스파드 VII/XIII를 타고 같은 지역에서 작전했다. 지휘권은 명예롭게도 잔나스 소령에게 맡겨졌다. 또한 제533 정찰·폭격 비행대대는 1918년 6월 1일 세레스 지방 디미트리차에 본부를 두고 창설되었으며, 전쟁 말기의 제534 정찰 비행대대는 1918년 9월 레베트에서 편성되었다. 이 외에도 테살로니키 미크로 카라부르누에서 보조 시설이 운영되었다.
그리스 비행대대들은 스크라디레겐 전투에서 크게 공헌했다. 포격 조정, 폭격, 전선 정찰 임무를 수행하며 그리스 육군 사단들의 공격을 지원했다. 제533 비행대대의 합류 이후 작전 범위는 독일군과 불가리아군이 무너지던 동부와 북부 전선으로 확대되었다.
불가리아(1918년 9월 30일)와 오스만 제국(1918년 10월 20일)의 휴전 이후, 제531 비행대대는 1918년 10월 미크라 비행장에서 해산되었고, 제534 비행대대는 1919년 연합군의 러시아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한편 제533 비행대대는 브레게 14A2/B2기를 새로 받았으며, 전쟁이 끝난 후 모든 시설은 AUS의 소유가 되었다.
해군 항공의 역사
해군은 1914년 4월 20일 해군 항공단(NAS)을 창설했으며, 해군 현대화를 담당하던 영국 사절단이 이 사업에 참여했다. NAS 장비를 위해 해군은 영국으로부터 소피위스 그리스 수상기 3기를 주문했고, 첫 번째 기체는 1914년 5월 그리스에 도착했다. 오늘날 엘레프시나 공항 근처 아스프로피르고스에는 항공학교가 설립되었고, 아리스티디스 모라이티니스는 1914년 10월 다른 두 장교와 함께 그곳에서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
지역의 부적합성 때문에 NAS는 팔레오 팔리로로 이전했고, 학교 장비는 헨리 파르망 HF.22 4기로 보강되었다. 그러나 1915년 가을 모라이티니스를 비롯한 숙련된 항공사와 정비사들이 전출되면서 NAS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NAS의 재건과 영웅 모라이티니스
NAS의 재건은 1916년 10월 모라이티니스가 다시 지휘를 맡으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NAS는 RNAS(영국 왕립해군항공대) 제2영국윙의 일부로 운용되었으며, 작전 지역은 주로 독일군과 불가리아군이 강력한 공군력을 갖추고 있던 남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였다.
1917년 3월 18일, 모라이티니스는 헨리 파르망 HF.22기를 몰고 심바스 중위를 관측사로 삼아 드라마의 제레빅 공항을 폭격, 격납고들을 파괴하는 대담한 임무를 수행했다. 이어서 드라마 기차역을 폭격하여 열차 3량을 파괴했다. 이러한 NAS 항공사들의 활약은 1917년 5월 그리스 G 비행대대 창설로 이어졌다.
G 비행대대는 영국군과의 합동작전에서 북트라키아의 목표물과 갈리폴리 상공을 공격했으며, 독일 승무원과 함께 오스만 함대에 합류한 독일 순양함 괴벤과 브레슬라우(각각 야부즈 술탄 셀림, 미딜리로 개명)에 대한 작전에도 참여했다. 특히 1918년 1월 20일 이 함선들이 에게해로 진출하자 연합군 전체가 동원되었고, 이 사건은 '괴벤 사태'로 알려지게 되었다. 오스만 함선들은 그리스와 영국 항공사들의 합동 작전으로 끊임없이 추적당했다.
작전 기간 내내 모라이티니스는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소피위스 캐멀 1F.1 추격기로 연합군 폭격기를 요격하려던 적기 3기를 격추했다. 반면 폭격 임무 중 해군 소장 스피리돈 함바스는 1918년 8월 21일 독일 에이스 파일럿 에밀 마이네케에 의해 격추되어 전사했다.
1918년 3월 24일 새 법령에 따라 NAS는 4개 분견대, 총 43기의 항공기, 그리고 팔레오 팔리로·타소스·무드로스·스타브로스·수니오의 항공기지를 갖춘 체제로 재편되었다.
종전과 모라이티니스의 최후
1918년 6월, NAS는 소아시아 방면의 목표물에 대한 작전을 수행하여 남에게해에서 적 항공세력을 소탕했다. 오스만 제국의 항복 후, 모라이티니스가 이끄는 그리스 비행대대는 이스탄불의 아기오스 스테파노스 공항으로 비행했으며, 그리스 항공사들의 등장은 현지 그리스인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1918년 12월 22일, 모라이티니스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급사하면서 해군 항공은 큰 타격을 입었다.
1914~1918년 운용 항공기
군용 항공
브레게 14 A2(정찰/군사협력)/B2(폭격)
코드론 G.3(훈련/정찰)
도랑 AR.1(정찰)
파르망 F.40(정찰)
니우포르 24/24bis/27(추격)
스파드 VII(추격)
스파드 XIII(추격)
해군 항공
에어코 데 하빌랜드 DH 4(폭격기)
에어코 데 하빌랜드 DH 6(훈련기)
에어코 데 하빌랜드 DH 9(폭격기)
로열 에어크래프트 팩토리 B.E.2(훈련/정찰/경폭격기)
브리스톨 스카웃 C(정찰/전투)
헨리 파르망 HF.22(훈련 수상기)
숏 184(정찰/폭격/어뢰기)
소피위스 베이비(정찰/폭격)
소피위스 배트보트
소피위스 캐멀 1F.1(추격)
소피위스 그리스 수상기(훈련 수상기)
소피위스 퍼프(추격)
소피위스 스터터 9400(요격/전투)
소피위스 스터터 9700(폭격)
소피위스 트리플레인(요격/정찰)
출처: 그리스 공군(Hellenic Air Fo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