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그리스의 마지막 수비수… 초강대국 로마에 맞서 끝까지 싸운 아카이아 동맹군

그리스의 마지막 수비수… 초강대국 로마에 맞서 끝까지 싸운 아카이아 동맹군

아카이아 동맹군의 성장과 재편

아카이아 동맹(Achaean League)은 기원전 3세기부터 그리스에서 강대한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유능한 지휘관 아래 이들의 군대는 그리스 내부의 분쟁에서는 충분히 활약할 수준이었지만, 압도적인 로마의 전쟁 기계 앞에서는 버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초기 아카이아 동맹군은 호플리테스(hoplites) 중심의 중장보병 부대, 전통적인 기병, 펠타스트(peltasts), 프실로이(psiloi) 등 경장보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275년경, 군대는 새로운 체계로 전면 개편됩니다. 아카이아 시민들은 기존의 무장을 내려놓고 대형 방패, 긴 창, 투창, 검으로 무장한 '방패병'으로 재무장했습니다. 정예 병력에게는 흉갑이 추가로 지급되어 '토라키테스(thorakites)'라 불렸습니다.

경기병과 중기병은 투창과 방패를 장비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구성된 동맹군은 아라토스(Aratus)의 지휘 아래 스파르타의 클레오메네스(Cleomenes)에게 연이어 패배를 당했습니다.

기원전 207년, 필로포이멘(Philopoimen)이 동맹의 장군으로 취임하면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그는 보병 대부분을 마케도니아식 긴 창인 사리사(sarissa)로 재무장시켰고, 중기병 역시 방패와 투창을 버리고 긴 창(크시스톤·xyston)으로 무장하면서 전투 기병에서 돌격 기병으로 역할을 전환했습니다. 경기병은 방패를 갖춘 타렌트식 기병 양식을 따랐습니다. 이렇게 개편된 동맹군은 스파르타의 참주 마하니다스(Mahanidas)와 나비스(Nabis), 그리고 마침내 로마군과 맞서 싸우게 됩니다.

종말로 가는 길

기원전 148년, 아카이아군은 프티오티스(Phthiotis) 지방의 스카르페이아(Scarfia)에서 로마군에게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고, 지휘관 크리톨라오스(Critolaus)도 전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전투에 대한 기록—참여 병력이나 전투 경위 등—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크리톨라오스의 죽음 후,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출신의 디아이오스(Diaios)가 동맹의 지도권을 넘겨받았습니다. 참화를 직면한 그는 즉각 비상 조치에 나섰습니다. 무엇보다 스카르페이아에서 소멸한 군대를 대체할 새로운 병력이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동맹의 제한된 인구 규모 때문에 대규모 징집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디아이오스는 노예 12,000명을 해방시켜 사리사 창병(sarissaphoros)으로 무장시키고, 허락되는 한 최소한의 훈련만 시켰습니다. 여기에 경무장 병사 2,000명과 기병 불과 500명을 더 소집했습니다. 이렇게 모은 군대는 코린토스에 집결했고, 그곳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로마 장군 루키우스 뭄미우스(Mommius)는 보병 23,000명과 기병 3,500명을 이끌고 있었지만, 디아이오스가 겨우 모은 병력은 14,500명에 불과했습니다.

레프콥트라, 한 국가의 영웅적 최후

결정적 순간은 기원전 146년 여름, 고대 코린토스 교외의 레프콥트라(Lefkopetra)에서 찾아왔습니다. 디아이오스는 좌익을 도시 성벽에 기대어 배치하고, 사리사 창병 팔랑크스를 중앙에, 소수의 기병을 우익에 배치했습니다. 뭄미우스 역시 통상적인 진영으로 군대를 편성했습니다. 중앙에는 군단병들을, 좌익에는 기병을 두어 소수의 그리스 기병과 맞섰습니다. 양군은 하루 종일 이 진형을 유지한 채 서로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로마군은 진영으로 물러나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디아이오스는 로마 진영에 감행한 야습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적 다수를 살상하고 방패들을 노획했습니다. 그리스 땅에서 고대 그리스 장군의 손에 넘어간 마지막 적의 전利品이었습니다. 로마군은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졌지만 곧 재정비하여 그리스군을 격퇴했습니다.

다음 날, 분노한 뭄미우스는 '건방진' 그리스 장군과의 결전을 결심합니다. 두 군대는 다시 마주 섰고, 로마 보병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23,000명의 군단병이 12,000명의 팔랑크스 병사와 맞붙으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로마군은 무거운 투창(필룸·pila)을 퍼부어 그리스 사리사 창병들에게 손실을 입혔지만, 두터운 종심 덕분에 그리스 대열은 쉽게 붕괴되지 않았습니다. 로마군이 팔랑크스를 돌파하려 할 때마다 실패했고, 그때마다 수십 구의 로마군 시체가 그리스 사리사의 창끝에 꽂힌 채 쓰러졌습니다. 팔랑크스의 측면이 보호되는 한, 군단병들이 이를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뭄미우스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새로운 공격을 거듭 명령했지만 결과는 늘 같았습니다. 반면 디아이오스는 병력 열세에도 적에게 계속 손실을 입히는 상황에 충분히 만족할 만했습니다.

그러자 뭄미우스는 마침내 기병을 전장에 투입하기로 합니다. 7대 1이라는 압도적 열세에도 그리스 기병들은 영웅적으로 싸워 처음에는 로마 기병을 격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퇴까지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곧 적의 수적 우위가 무게를 실었습니다. 그리스 기병들은 하나둘씩 쓰러졌고, 살아남은 소수는 전장을 이탈했습니다. 팔랑크스의 측면이 완전히 노출되자, 뭄미우스는 군단병들에게 정면 공격을, 기병에게는 측면 공격을 명령했습니다.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그리스군은 와해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하나같이 도주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끝까지 싸우다 영웅적으로 전사했습니다. 아카이아 동맹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는 로마에 점령되었습니다. 수백 년간 빛나던 그리스 도시 문명의 자율성은 이날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