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6만 페르시아 대군을 사상자 200명으로 물리친 기적, 파시스 공방전의 기만 전략

6만 페르시아 대군을 사상자 200명으로 물리친 기적, 파시스 공방전의 기만 전략

서기 555년, 비잔티움(동로마)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은 흑해 연안 라지카(Lazica)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다시 한번 충돌했습니다. 일련의 전투 끝에 나호라간(Nakhoragan) 장군이 이끄는 강력한 페르시아 대군이 파시스(Phasis)라는 도시에 고립된 소규모 비잔티움 병력을 포위하면서 결정적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6만 명 대 2만 명, 압도적인 열세

주요 사료인 아가티아스 스콜라스티쿠스(Agathias Scholasticus)의 기록에 따르면, 페르시아군의 규모는 무려 6만 명을 넘었습니다. 반면 비잔티움 측 지휘관 마르티누스(Martinus) 장군이 확보한 병력은 유스티누스(Justin) 장군의 소규모 증원 부대를 합쳐야 겨우 2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었습니다. 파시스의 성벽은 돌이 아닌 나무로 지어졌기 때문에, 페르시아 장군에게 도시 함락은 어렵지 않아 보였습니다. 다행히 도시는 같은 이름의 강(파시스 강) 인근에 자리 잡고 있었고, 남쪽은 해자로 덮여 있어 최소한의 방어 이점은 있었습니다.

페르시아군의 포위와 방어 준비

페르시아군은 곧바로 도시를 포위했습니다. 며칠간의 힘든 작업 끝에 해자를 메우고 강 양안을 잇는 교량까지 건설했습니다. 한편 마르티누스 역시 방어 체계를 치밀하게 조직했습니다. 유스티누스와 그의 부대를 서쪽 성벽에 배치하고, 자신은 가장 취약한 남서부 구역의 방어를 직접 맡았으며, 나머지 장교들에게는 각 구역의 경비를 맡겼습니다.

마르티누스의 부대는 현지 출신 경보병·중장보병, 이사우리아(Isauria) 경보병, 소수의 정예 비잔티움 병사, 그리고 게르만 용병들로 구성된 이질적인 부대였습니다.

무단 출격, 그리고 위기

마르티누스는 자신의 명령 없이는 어떠한 출격도 금지하겠다는 분명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일개 소규모 부대가 자발적이었는지 명령에 따른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안길라(Angila), 필로마테우스(Philomatheus), 테오도로(Theodore)가 이끌며 성문 밖으로 나가 포위군을 공격해 버렸습니다.

이 부대의 병력은 겨우 200~300명에 불과했고, 곧바로 포위당해 궤멸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지휘관들의 용기가 그들을 구해냈습니다. 페르시아군이 에워싸는 순간, 지휘관들은 성벽에서 가장 가까운 적진을 향해 필사적인 돌격을 감행했고, 결국 포위망을 뚫고 대다수가 무사히 도시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거짓 소식으로 만든 기회

이 사건 이후 마르티누스는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병사들을 모아 연설하던 중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사자'가 갑자기 나타나, 황제가 그들의 전투 의지를 치하하며 강력한 증원군이 이미 가까이 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마르티누스는 놀란 척 연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짜증을 냅니다. "증원군이 오면 페르시아인들에게서 전리품을 나눠 가져갈 사람이 늘어나는데, 우리 혼자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병사들은 그의 말에 열광적으로 호응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었고, 그 '사자'는 마르티누스가 꾸민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잔티움 장군은 이 '소식'이 반드시 페르시아-사산 진영에까지 전해지도록 조치했습니다. 나호라간은 즉시 군대의 상당 병력을 보내 존재하지도 않는 비잔티움 증원군을 찾게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도시를 체계적으로 공성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도시를 불태우기로 결심합니다.

두 번째 계략, 유스티누스의 역습

나호라간은 부하들에게 인근 숲에서 나무를 모아 와 나무 성벽에 불을 지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티누스에게는 아직 숨겨둔 패가 있었습니다. 유스티누스에게 보병과 기병 5,000명을 이끌고 몰래 도시를 빠져나가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페르시아군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고, 다음 날 여명과 함께 총공격을 개시했습니다.

페르시아의 공격이 정점에 달해 방어군이 짓눌리고 있던 바로 그 시각, 유스티누스의 부대가 남쪽에서 페르시아군을 기습했습니다. 순식간에 사산 진영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페르시아군은 자신들이 비잔티움 증원군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믿었고, 공황 속에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성 안의 방어군 역시 적의 혼란을 확인하고 성문을 열고 총출격했습니다.

무너진 6만 대군, 단 200명의 희생

페르시아군의 공황은 전군으로 번졌습니다. 전투 코끼리를 보유한 사산군 일부만이 저항을 이어갔지만, 코끼리들이 타격을 입고 패닉에 빠지면서 오히려 아군 페르시아 병사들을 짓밟으며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자랑스러웠던 나호라간의 대군은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6만에 달하는 대군을 상대로 한 방어전에서 비잔티움이 잃은 것은 불과 200명의 사상자였습니다. 허위 정보로 적을 교란하고, 은밀한 기동으로 배후를 치는 마르티누스의 이중 기만 전략은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6만 페르시아 대군을 사상자 200명으로 물리친 기적, 파시스 공방전의 기만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