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4월 20일, 아테네. 그날은 '아테네 공방전'이라 불리는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즉 아티카 하늘에서 벌어진 마지막 공중전이 펼쳐진 날이다. 아크로폴리스에 나치의 만자(하켄크로이츠) 깃발이 게양되기 불과 일주일 전, 1941년 2월 그리스에 파견된 영국 왕립공군(RAF) 부대 중 끝까지 남아 있던 허리케인 전투기 15대가, 백 대, 어쩌면 이백 대에 달하는 독일 전투기와 경폭격기를 상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리스 하늘에서 가장 격렬했던 공중전 중 하나를 벌인 것이다.
그날 아테네와 피레우스 시민들에게 머리 위에서 벌어진 것은 문자 그대로 생사를 건 싸움이었다. 높은 하늘에서 전투기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만자 문양과 노란 기수를 단 독일 전투기들이 영국 허리케인 전투기들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젊은 RAF 조종사들은 학창 시절 동경의 눈으로 배워왔던 도시를 방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 하늘이 독일 전투기들로 뒤덮였다"
"우리는 약 9천 피트 고도로 비행하고 있었다. […] 갑자기 우리 주변의 온 하늘이 독일 전투기들로 뒤덮이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훨씬 높은 곳에서 우리를 향해 내달렸다. […] 우리는 편대를 깨뜨렸고, 이제 각자 자기 목숨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아테네 공방전'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회고한 이는 당시 무명의, 허리케인 비행 경험이 겨우 7시간밖에 되지 않는 미숙한 RAF 젊은 조종사였다. 훗날 아동 단편 소설과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는 로알드 달이었다. 그는 자서전 『고잉 솔로(Going Solo)』를 통해 영미권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테네 공방전'을 알렸고, 그리스 조종사들이 궤멸적인 피해를 입어 1941년 5월 크레타로 무사히 도달한 영국 전투기가 단 5대에 불과했던 극적인 전시 상황 속 영국 공군의 활약을 세상에 소개했다.
아테네를 방어한 15명의 영국 조종사 중에는 남아프리카 출신의 에이스, 팻 파틀(Pat Pattle) 소령이 있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RAF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전투기 조종사 중 한 명으로, 이탈리아군과 독일군 항공기 50대 이상을 격추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별이 된 조종사
파틀은 전쟁 초기 영국 공군이 수에즈 운하를 방어하던 이집트에서 전투기 조종사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고, 1940년 11월 글래디에이터 전투기를 장비한 제80전투비행대대에 배속되며 그리스에서 정점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비극이었다. 아테네 공방전에서 그는 불타는 허리케인을 몰고 끝까지 싸우다 추락했는데, 추락 지점은 프시탈레이아 섬 동쪽 몇 킬로미터 지점, 엘레우시스 만 방면이었다. 생애 마지막 48시간 동안 그는 무려 독일기 5대를 격추한 직후였다.
그가 지휘하던 부대의 공식 기록은 영국군이 그리스 본토에서 철수하기 직전 독일군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파기되었다. 그럼에도 그의 개인 일기와 동료들의 증언 덕분에 확인된 격추 기록 대부분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그는 RAF 최고의 에이스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생애 마지막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뛰어난 시력을 지닌 이 숙련된 요격 조종사가 어떻게 배후를 내주고 기체 통제력을 잃게 되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알바니아 전선부터 아테네와 피레우스까지 5개월 반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리스 하늘에서 싸운 과도한 긴장이 그의 최후에 한몫했으리라는 점이다. 실제로 증언에 따르면, 인생의 마지막 날 그는 엘레우시스 야영지에서 독감으로 오한과 고열에 시달린 채 거의 일어나지도 못한 상태로 기체에 탑승했다고 한다.
역사 연구자들의 증언
"80년이 지난 지금, 제2차 세계대전의 대부분 사건들은 치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예외다. 그런 상황 속에서 파틀의 모범과 리더십이 없었다면 제33비행대대는 하나의 통합된 부대로서 기능을 상실했을 것이다." 당대 항공사 연구자이자 런던 '브리튼 공방전' 기념관 관장인 에드워드 맥매너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극심한 긴장이 그를 지치게 했고, 결국 아테네 상공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유럽연합과의 경쟁 관계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는데, 그리스에 대한 강한 연대감, 그리고 그리스 본토와 크레타 철수 과정에서 어딘가 우리가 그리스를 배신했다는 감정이 영국인들 안에 매우 강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파틀의 굳건한 저항과 그의 최후는 그것이 늘 그랬던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다른 영국 역사학자들 역시 이 15대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브리튼 공방전의 영웅적 조종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있다고 평가한다. 압도적으로 열세인 전력으로 적기 22대를 확실히 격추하고 아마도 8대를 추가로 격추했으며, 그 대가로 지휘관 팻 파틀을 포함한 3명의 전사자를 냈기 때문이다. 공중전 다음 날, 라리사 방어 구역의 그리스군은 리스트 원수에게 항복했고, 요아니나 비행장은 기동화된 SS 부대에 점령당했다. 그리스-영국 연합군의 그리스 본토 점진적 철수 경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잊혀진 이들을 위한 기념비
1990년 10월, 재향 항공인 협회와 RAF 아테네 클럽의 제안에 따라 그리스 공군은 엘레프시나 공군기지에 기념비를 세웠다. 1940년 10월 알바니아 전선에서부터 1941년 5월 크레타 함락 때까지 그리스 하늘을 방어하다 전사한 팻 파틀 소령과 그리스인 51명, 영국인 79명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엘레우시스가 선택된 데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1941년 4월 20일, '아테네 공방전'의 마지막 막이 바로 이곳 하늘에서 내려졌고, 그 주역은 RAF와 당시까지 전쟁 최고의 영국 에이스였던 스물일곱 살의 남아프리카 출신 팻 파틀 소령이었으니까요." 기념비의 건축적 구상, 설계, 감독을 맡았던 건축가 아타나시오스 콘스탄티노스 하질라코스는 이렇게 말했다.
"조각 작품이 중심이 되는 기존의 '학문적' 기념비 규범을 피했습니다. 여기서는 건축적 발상 자체가 기념비의 '영혼'이 되는 순수한 건축 구성물을 다룹니다. 그리고 이 경우 '영혼'은 물질적 요소가 아니라 비물질적인 것, 즉 공허함, 하늘입니다. 구조 요소들은 단지 그 공허함을 테두리로 감싸 형태를 부여하고 조형적으로 인식 가능하게 만들 뿐입니다."라고 하질라코스는 덧붙였다.
파틀 소령의 유해는 끝내 발견되지 못했다. 위험에 처한 동료를 구하려던 그의 기체는 독일 쌍발 전투기 두 대의 정확한 사격에 공중에서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다. 한 전설에 따르면, 그는 지금도 그곳, 깊은 바닷속에서 자신의 기체 조종석에 매여 있다고 한다. 투키디데스의 말처럼 — "위대한 이들에게는 온 땅이 무덤이다."
한편 젊은 로알드 달은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꽤 운이 좋았다. 여러 기체가 불길에 휩싸여 추락하는 것을 지켜본 후, 그 자신도 Ju-88 폭격기를 격추했지만 그 과정에서 기관총 사격을 받았다. 그는 문자 그대로 산산이 부서진 허리케인을 몰고 어떻게든 엘레우시스로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APE-BE, 바실리스 피아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