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헌법 제정 회의를 보이콧했을까? — 불참자들과 그 진짜 이유

'보이콧'이라는 표현은 정확한가?

"건국의 아버지들 중 일부가 1787년 헌법 제정 회의를 보이콧했다"는 주장은 종종 등장하지만, 이는 사실을 정확하게 담아낸 서술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당시 참석 자격이 있던 인물 가운데 실제로 회의에 오르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불참은 대부분 조직적인 항의 행위, 즉 '보이콧'과는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불참자들이 남긴 다양한 사유

1. 다른 의무와의 일정 충돌

당시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주(州) 차원의 공직이나 외교 임무 등 여러 책임을 동시에 떠안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토머스 제퍼슨과 존 애덤스는 각각 프랑스와 영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회의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2. 건강상의 문제

일부 인사들은 고령이나 질병 탓에 장기간 필라델피아에 머물며 밀도 높은 논의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3.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론

연방 헌법으로의 전환 자체를 경계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버지니아 출신의 패트릭 헨리는 강력한 중앙정부의 등장을 우려하여 "쥐 냄새가 난다(smelled a rat)"고 말했다는 일화로 유명한데, 그는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석을 거부했습니다.

4. 버지니아 계획에 대한 반발

회의가 시작된 뒤에도 이견은 이어졌습니다. 뉴욕의 존 랜싱 주니어와 로버트 예이츠는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버지니아 계획에 반대하며 회의 도중 자리를 떠났고, 조지 메이슨과 에드먼드 랜돌프 역시 최종 초안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결론: 조직적 보이콧은 아니었다

요컨대 1787년 헌법 제정 회의에는 불참자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이들의 불참은 서로 긴밀히 공조된 집단 항의는 아니었습니다. 개인적 사정, 건강 상태, 신념의 차이 등 저마다의 이유가 겹친 결과였으며, 조직적이거나 폭넓게 공조된 '보이콧'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