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군은 나치 독일의 지도자들과 군 지휘관들을 상대로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 규모의 전범 재판을 열었습니다. 1945년부터 시작된 뉘른베르크 재판은 반인도적 범죄, 전쟁 범죄, 평화에 대한 범죄 등을 다루며 현대 국제형사법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재판에서 실제로 심판대에 섰던 인물들은 누구였을까요?
재판에 회부된 나치 고위 관료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
공군(Luftwaffe) 총사령관이자 히틀러에 이어 나치 독일의 실질적 2인자였습니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집행 전 자결했습니다.
루돌프 헤스(Rudolf Hess)
나치당 부총격수(부총통)이자 히틀러의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 명이었으며, 1941년 영국 단독 비행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Joachim von Ribbentrop)
나치 독일의 외무장관으로, 독소 불가침 조약 등 주요 외교 협상을 주도했습니다.
빌헬름 카이텔(Wilhelm Keitel)
국방군 최고사령부(OKW) 총장으로, 히틀러의 군사 명령에 충실했던 핵심 군 수뇌부였습니다.
에른스트 칼텐브루너(Ernst Kaltenbrunner)
국가보안본부(RSHA) 본부장으로, 강제수용소 운영과 게슈타포 활동을 총괄한 인물입니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
나치당의 수석 이념가로서 나치 인종 이론을 체계화하고 점령 동부 지역 통치에 관여했습니다.
한스 프랑크(Hans Frank)
점령 폴란드의 총독으로서 잔혹한 점령 통치의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빌헬름 프릭(Wilhelm Frick)
내무장관으로서 나치 초기 권력 장악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율리우스 슈트라이허(Julius Streicher)
프랑켄 지역의 나치당 대구역 지도자이자 반유대주의 선동 신문 『슈튀머(Der Stürmer)』의 발행인입니다.
아르투어 자이스잉콰르트(Arthur Seyss-Inquart)
오스트리아 병합의 핵심 당사자였으며, 이후 네덜란드 점령지의 제국 행정관(총독)을 맡았습니다.
프리츠 자우켈(Fritz Sauckel)
노동력 배정 전권위원으로서 수백만 명의 강제 징용을 주도했습니다.
알프레트 요들(Alfred Jodl)
OKW 작전참모부장으로서 독일군의 전략 및 작전 계획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재판에 회부된 군 관계자
에리히 레더(Erich Raeder)
해군 원수이자 전쟁해군(Kriegsmarine) 총사령관으로, 초기 해전 지휘를 총괄했습니다.
카를 되니츠(Karl Dönitz)
레더의 사임 이후 해군 총사령관을 맡았으며, U보트 함대 운용을 지휘했습니다. 히틀러 사후에는 임시 국가원수직도 수행했습니다.
빌헬름 카나리스(Wilhelm Canaris)
국방군 첩보국(Abwehr) 국장이자 독일 저항 운동의 핵심 인물로, 나치 정권 말기 처형되었습니다.
한스 오스터(Hans Oster)
첩보국 부국장으로서 히틀러 암살 음모 등 저항 활동의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발터 바를리몬트(Walter Warlimont)
OKW 작전참모부 차장으로서 군사 지도부의 핵심 참모였습니다.
알프레트 크루프(Alfred Krupp)
조병창 기업 크루프의 경영자로, 전쟁 물자 생산과 강제 노동 동원에 연루되었습니다. 그의 재판은 본 재판 이후 진행된 산업가 재판에서 별도로 치러졌다는 점도 함께 알아두면 좋습니다.
맺음말
뉘른베르크 재판은 단순히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명령에 따랐다'는 이유로 범죄를 면책할 수 없다는 원칙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이 재판에 언급된 인물들의 직책과 역할을 살펴보면, 나치 체제가 정치·군사·경제 전 분야에 걸쳐 얼마나 조직적으로 작동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