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5월 27일,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영국 왕립해군은 나치 독일의 자랑이던 초대형 전함 비스마르크(Bismarck)를 격침시켰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급으로 평가받던 이 거함의 침몰은 영국 해군에겐 값진 승리였고, 대서양 해전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스마르크, '불침함'의 등장
비스마르크는 배수량 5만 톤이 넘는 독일 최대의 전함으로, 강력한 화력과 탁월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1941년 5월, 비스마르크는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과 함께 대서양으로 진출해 영국의 보급선을 차단하는 '라인위붕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출항 소식을 접한 영국 해군은 덴마크 해협에서 요격 작전을 벌였으나, 교전 과정에서 영국의 상징인 순양전함 후드(Hood)가 침몰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충격을 받은 영국은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나섰습니다.
비스마르크를 침몰시킨 결정적 요인
1. 영국 정보기관의 첩보 활동
영국은 독일군의 통신을 가로채 비스마르크의 항로와 위치를 지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연합군 측 정보망이 제공한 단서까지 더해지면서, 영국 해군은 비스마르크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에 가깝게 추적하며 매복 공격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2. 압도적인 영국 해군 전력
영국 해군은 항공모함 아크 로열, 전함 킹 조지 5세와 로드니, 그리고 다수의 순양함과 구축함을 동원해 비스마르크를 포위망에 몰아넣었습니다. 특히 아크 로열에서 발진한 구형 어뢰공격기 '소드피시' 편대가 예상치 못한 결정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3. 비스마르크 자체의 약점
강력한 함정이었지만 비스마르크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1941년 5월 26일, 어뢰기의 공격으로 비스마르크의 키(타륜)가 고착되어 조타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비스마르크는 프랑스 브레스트로 도주하지 못하고 원을 그리며 표류하다가 영국 함대와의 최후 결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최후의 해전과 침몰
1941년 5월 27일 아침, 전함 로드니와 킹 조지 5세가 주력인 영국 함대가 비스마르크를 포위했습니다. 기동 불능 상태였던 비스마르크는 끝까지 반격을 시도했지만, 집중포화에 함교와 주포가 무력화되었습니다. 결국 그날 오전 늦게 비스마르크는 대서양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고, 2,200여 명의 승무원 중 생존자는 100명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역사적 의미
비스마르크의 침몰은 제2차 세계대전의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독일 해군 최강의 전함마저 격침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이 승리는 영국과 연합군의 사기를 크게 북돋았고, 이후 독일 수상함대의 대서양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