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Archduke Franz Ferdinand)의 부인이었던 호엔베르크 공작부인 조피(Sophie, Duchess of Hohenberg)는 1914년 부부가 함께 암살당했을 때 임신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사라예보 사건,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아내 조피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 중이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에게 저격당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곧바로 국제적 긴장을 폭발시키며 제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발단이 되었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암살 사건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귀천상혼으로 맺어진 두 사람
조피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합스부르크 황실의 직계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의 결혼은 '귀천상혼(morganatic marriage)'으로 분류되었고, 조피는 비록 대공의 정식 아내였지만 오스트리아 황후가 될 자격을 갖지 못했습니다. 대신 그녀에게는 '호엔베르크 공작부인'이라는 별도의 작위가 주어졌습니다.
남겨진 세 자녀
부부 사이에는 장녀 조피(Princess Sophie), 장남 막시밀리안(Maximilian), 차남 에른스트(Ernst) 등 세 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다만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자녀들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황위 계승권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임신 설에 대한 답
일각에서 조피가 암살 당시 임신한 상태였다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임신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서 생을 마쳤고, 세 자녀만이 뒤에 남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