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나는 ‘폭풍 작전’에서 살아남았다 — 폴란드 국내군 병사가 회상하는 붉은 군대와의 첫 만남

제2차 세계대전 중 동부 전선은 폴란드 제2공화국의 동부 영토를 수차례 넘나들며 끝없는 유혈 사태를 낳았다. 그러나 1943년 말 전투가 다시 폴란드 국경에 가까워지자, 폴란드인들은 독일군과의 싸움에서 한 번 더 힘을 과시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바로 ‘폭풍 작전(Operation Tempest)’이었다. 국내군(Armia Krajowa) 병사들은 이 작전을 통해 다가오는 붉은 군대와의 대면 속에서 전간기 폴란드의 국경선을 스스로 그려내고자 했다. 작전은 1944년 1월 15일 볼히니아에서 시작되었으며, 이곳에서 국내군 제27볼히니아 보병사단이 싸웠다.

폴란드 지휘부의 구상은 붉은 군대가 폴란드 땅에 들어서기 직전, 폴란드군이 먼저 그 땅을 해방해 소련군 앞에서 ‘주인’으로서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폭풍 작전’은 훨씬 더 험난한 시련이었고, 붉은 군대 병사들과의 만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첫 접촉과 오해

지휘부의 명령을 수행하며 소련군과의 협력을 모색하던 일반 병사들은 자신에게 닥칠 위협을 미처 알지 못했다. 반면 명확한 행동 지침을 받은 소련 측 정치장교들은 빠르게 상황을 ‘바로잡아’ 나갔다. 시들체(Siedlce) 지역에서 활동한 국내군 병사 비탈리스 스코루프카(Witalis Skorupka) ‘오르젤(Orzeł, 독수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곳에서 ‘폭풍’은 1944년 7월 시작되었다. 그는 저서 『나, 오르젤 — 케디프에서 사형대까지』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소련군과 접촉했다. 내 어머니가 당시 러시아 영토였던 마리우폴 출신이어서 늘 러시아어를 배우라고 하셨는데, 덕분에 나는 러시아어를 잘 구사할 수 있었다 [...]”
나는 ‘폭풍 작전’에서 살아남았다 — 폴란드 국내군 병사가 회상하는 붉은 군대와의 첫 만남

게릴라들은 곧 폴란드에 진입한 소련군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사진은 『나, 오르젤 — 케디프에서 사형대까지』에 실린 것으로, 국내군 제22보병연대 소속 시들체 케디프(Kedyw) 병사들을 보여준다. 앉은 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비탈리스 스코루프카 ‘오르젤’이다.

“나는 러시아 여성 정치장교로 보이는 인물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 있다 [...]. 그녀의 첫 질문은 ‘당신들은 누구 편이냐?’였다. 즉, 어떤 세력을 위해서 싸우느냐는 뜻이었다. 나는 ‘우리는 런던을 위해 싸운다. 우리의 정통 정부는 런던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꾸했다. ‘니체보(그런 소리 마라), 당신네 정통은 모스크바의 얼간이다.’”

스코루프카의 회상에 따르면, 붉은 군대 병사들의 태도는 모호했다. 한편으로는 게릴라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한 불신을 드러냈다. 어느 순간에는 독립 지하조직원들이 독일과 협력하고 있다고까지 비난했다!

그 이유는 국내군 부대에 합류한 한 무리의 피난민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전에 독일 국방군에 강제 징집되어 독일군 제복을 입고 있던 폴란드인들이었다. 소련군은 이들의 존재를 빌미 삼아 소코우프(Sokołów)와 비아위스토크(Białystok) 공격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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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를 타고 폴란드로 온 붉은 군대

그렇다면 소련군은 ‘해방된’ 나라의 주민들과 수호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을까? ‘오르젤’의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테러와 체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놀람과 믿기지 않음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낡은 군복과 불완전한 장비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의 저서에는 시들체에 붉은 군대가 진입한 장면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소련 기갑 부대는 내 기억으로는 T-34 전차 11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차들이 시들체에 진입하자 그 뒤를 보병이 따랐는데, 대부분 아시아계 병사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일부 전차 뒤에는 썰매가 매달려 있었고, 그 위에는 아시아계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전차와 썰매 외에는 다른 차량은 없었다. 소련군은 ‘해방’ 과정에서 길목마다 마주치는 폴란드 지주들의 저택과 농장에서 거대한 썰매를 약탈해 갔다. 보병들은 전차 위에, 그리고 전차가 끄는 썰매 위에 올라앉았다.”

“정말 기묘한 광경이었다”고 스코루프카는 말을 맺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뭐, 그래도 붉은 군대에게 더 나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

이윽고 전선의 현실은 폴란드-소련 형제애에 대한 순진한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폴란드 게릴라들은 무장 해제당하고 각종 괴롭힘에 시달렸다. 어떤 이들은 수년간 러시아 깊숙한 곳으로 끌려갔고, 어떤 이들은 가혹한 심문을 견뎌야 했다. 또 다른 이들은 NKVD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려 애썼다.

나는 ‘폭풍 작전’에서 살아남았다 — 폴란드 국내군 병사가 회상하는 붉은 군대와의 첫 만남

붉은 군대 부대는 종종 기묘한 광경을 연출했다. 그들은 썰매를 타고 시들체에 진입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다.

‘오르젤’과 그의 부대는 이미 빌뉴스와 볼히니아에서 ‘폭풍 작전’이 어떻게 끝났는지 들은 바 있었다. 그럼에도 동쪽에서 전해지는 불길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명령을 따랐다. 그리고 그 명령은 협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시들체 근교 국내군 부대의 역사 역시 추방과 체포로 끝났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다행히 소련군에서 복무 중이던 우크라이나계 중위 한 사람이 스코루프카와 동료들에게 도망쳐 무기를 땅에 묻고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하라고 설득했다. 같은 시기, 도시에 막 도착한 자바르친스키(Zawarczyński) 대령도 비슷한 명령을 하달했다. 스코루프카는 “살아남은 지휘관들에게 숨기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소련군과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잡기 시작할 테니까”라고 회상했다.

‘오르젤’은 며칠간 은신했다. 이후 그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바르샤바 봉기 지휘부에 비밀 소포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출처

  • Witalis Skorupka, Beata Sławińska, 『나, 오르젤 — 케디프에서 사형대까지(Me, Orzeł. From Kedyw to Death Row)』, Bellona,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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