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빅스버그 전투 승리에 링컨 대통령이 크게 기뻐했던 이유

먼저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습니다. 빅스버그 전투는 링컨 대통령 생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빅스버그 공성전은 1863년 5월 18일부터 7월 4일까지 벌어졌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것은 그로부터 약 2년 뒤인 1865년 4월 15일이었습니다. 즉, 링컨 대통령은 연방군의 승리 소식을 직접 접하며 깊은 감격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요?

미시시피 강을 완전히 장악한 결정적 승리

빅스버그는 미시시피 강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자리한 요새 도시로, 남부연합이 강 유역에서 마지막으로 지키던 거점이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일찍부터 "빅스버그야말로 열쇠다. 그 열쇠를 우리 주머니에 넣기 전에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라고 강조할 만큼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1863년 7월 4일,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이 이끄는 연방군에게 존 펨버턴 장군의 남부군이 항복하면서 미시시피 강 전체가 북부의 손아귀에 들어왔습니다. 이로써 텍사스, 아칸소, 루이지애나 등 남부 서부 지역이 동부 본토와 갈라져 나오며 남부연합은 사실상 두 조각으로 찢기고 말았습니다. 보급선과 연락망이 끊긴 남부의 패색은 이때부터 뚜렷해졌습니다.

게티즈버그 승리와 겹친 이중의 기쁨

기쁨을 더욱 크게 만든 것은 시점이었습니다. 빅스버그가 함락되기 하루 전인 7월 3일, 로버트 E. 리 장군의 남부군이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패배하며 북진을 멈추었습니다. 두 소식이 거의 동시에 워싱턴에 전해지면서 1863년 독립기념일은 연방에 이중 축제가 된 날이 되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이 소식을 접하고 "이 승리에서 느끼는 커다란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라고 감격을 토로했으며, 수도 워싱턴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 100발의 예포 발사를 명령해 승리를 축하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분수령이 된 순간

링컨 대통령의 기쁨이 단순한 승리 축하를 넘어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빅스버그와 게티즈버그의 연이은 승리는 남북전쟁의 흐름을 북부 쪽으로 확실히 기울인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특히 빅스버그 함락은 그랜트 장군이 훗날 연방군 총사령관으로 발탁되는 발판이 되었고, 전쟁의 조기 종식과 링컨의 재선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