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2제정의 몰락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의 패배는 프랑스 제2제정의 붕괴와 제3공화국의 수립으로 이어졌습니다. 1852년부터 프랑스를 통치해 온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9월 2일 스당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그의 포획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격렬한 혁명이 일어났고, 같은 해 9월 4일 제2제정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제3공화국의 수립
1870년 9월 4일, 아돌프 티에르를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제3공화국이 선포되었습니다. 제3공화국은 제2제정보다 훨씬 민주적인 정부 체제였으며, 보통 남성 선거권 도입,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보장 등 다양한 개혁을 단행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조약
1871년 5월 10일 체결된 프랑크푸르트 조약으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에 따라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 지역을 독일에 할양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조약은 프랑스에게 굴욕적인 패배였으며, 이후 프랑스 사회 전반에 복수주의(레방슈) 감정이 확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파리 코뮌의 등장과 진압
1871년 3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약 두 달간 존속한 파리 코뮌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파리 시민들이 수립한 급진적 사회주의 정부였습니다. 파리 코뮌은 프랑스 정부군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었고, 지도자 다수가 처형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파리 코뮌은 프랑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프랑스의 정치와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 민족주의의 부상
전쟁의 패배와 프랑크푸르트 조약은 프랑스 내 민족주의 고조를 불러왔습니다. 많은 프랑스인들이 알자스와 로렌의 상실에 분노했으며, 국가가 당한 굴욕을 반드시 설욕해야 한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상한 민족주의는 훗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