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주장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1815년 빈 회의 이후 1914년까지 유럽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단순한 '연장선'으로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시기의 분쟁은 발생 원인, 참전 국가, 지정학적 맥락에서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발생 원인의 차이
1815년 이후 유럽의 전쟁들은 대체로 특정한 지역적·정치적 목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크림 전쟁(1853~1856)은 오스만 제국을 둘러싼 러시아와 서구 열강의 대립이, 독일 통일 전쟁들(1864, 1866, 1870~1871)은 독일 통일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배경이었습니다. 각 전쟁은 개별적인 원인과 종결 조건을 가졌고, 전쟁이 끝나면 외교적 타협을 통해 상황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제1차 세계대전은 사라예보 사건(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을 도화선으로, 내셔널리즘의 고조, 제국주의적 경쟁, 군비 확장 경쟁, 복잡하게 얽힌 동맹 체제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며 발생했습니다.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훨씬 다층적인 성격의 전쟁이었습니다.
참전 국가와 전쟁 성격의 차이
19세기 유럽의 전쟁은 대개 소수 국가가 참여하는 제한적 분쟁이었고, 주로 육군 간 교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로 구성된 동맹국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일본, 그리고 미국까지 참전한 협상국이 충돌하며 유럽을 넘어 세계 규모의 전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참호전, 기관총, 독가스, 전차, 잠수함, 항공기 등 산업화된 무기 체계가 동원되면서 국가 전체의 자원과 인구를 동원하는 총력전(total war)이라는 새로운 전쟁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이는 이전 시기의 전쟁과 질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입니다.
지정학적 환경의 차이
19세기 유럽은 빈 체제를 기반으로 열강 간 세력 균형이 유지되는 가운데 개별 전쟁이 관리되었습니다. 반면 20세기 초에는 독일의 급격한 부상, 오스만 제국의 약화, 발칸 반도 민족주의의 격화, 영국과 독일 간 해군 경쟁 등 새로운 긴장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상호 연결된 동맹 체계는 한 지역의 분쟁이 순식간에 전 유럽으로 번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연속성을 강조하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물론 일부 역사학자들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 프랑스가 알자스-로렌을 할양하며 남긴 불만, 발칸 전쟁(1912~1913)의 여파, 열강 간 식민지 경쟁 등 19세기 후반의 갈등이 제1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연속성의 관점은 일정 부분 타당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영향을 준 배경'일 뿐입니다. 원인, 참전 세력, 전쟁의 규모와 성격 모두 이전 전쟁들과 구별되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을 1815~1914년 전쟁들의 단순한 연장선으로 보는 것은 정확한 설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