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트르 글린스키 부총리가 바르샤바 사스키 궁전(Pałac Saski) 재건축을 담당할 특수목적회사의 이사진을 공식 임명했습니다.
2018년 폴란드 독립 회복 100주년을 맞아 안제이 두다(Andrzej Duda) 대통령은 바르샤바에 위치한 사스키 궁전의 복원을 약속하는 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무명 용사의 묘와 함께하는 사스키 궁전은 폴란드인들의 집단적 기억 속에 영원히 자리하며 우리 민족 유산의 불가분한 요소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된 이 건물을 복원하는 것은 독립 회복 100주년 기념의 영구적인 흔적을 후세에 남기는 특별한 추념 행위이며, 주권 조국의 물질적 유산을 지키려는 폴란드 국민의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오늘날 공화국과 1918년에 재탄생한 폴란드 국가를 잇는 유대를 상징하는 눈에 보이는 표지가 될 것입니다."라고 대통령은 강조했습니다.
2021년 12월 1일 수요일, 바르샤바 왕성에서 열린 행사에서 피오트르 글린스키(Piotr Gliński) 부총리는 '팔라츠 사스키(Pałac Saski)' 유한책임회사 이사진 임명장을 전달했습니다. 얀 에드문트 코발스키(Jan Edmund Kowalski)가 대표이사로 선임되었고, 로베르트 치치르카(Robert Cicirka)는 재무 담당 부대표, 로베르트 베르니슈(Robert Bernisz)는 이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아울러 6인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도 함께 설치되었습니다.

피오트르 글린스키
글린스키 부총리는 이번 재건축을 발의한 미술사·도시계획·건축 분야 학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는 이들이 복원 의지가 있었음에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나 그 직후 몇 년간은 궁전을 재건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엘지비에타 비테크(Elżbieta Witek) 세임 의장은 행사 참석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말이 마침내 행동으로 옮겨졌다"고 소박하게 표현했습니다.
부총리에 따르면 재건축될 건물들은 "폴란드 공화국 상원과 주청이라는 매우 중요한 두 개의 국가기관, 그리고 문화·교육·사회 관련 시설"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제출된 법안에 따라 시행되는 사업의 총비용은 10년에 걸쳐 약 24억 5323만 즈워티(PLN)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라는 내용이 법안 설명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스키 궁전, 간략한 역사
사스키 궁전의 전신은 토비아시 모슈친(Tobiasz Morsztyn)의 저택이었습니다. 1661년 이후 그의 형제이자 상속자인 얀 안제이 모슈친(Jan Andrzej Morsztyn)이 저택을 네 개의 특징적인 탑을 갖춘 바로크 양식의 궁전, 이른바 모슈친 궁전으로 재건축했습니다.
1713년, 폴란드를 통치한 두 작센 왕 중 첫 번째였던 아우구스트 2세(August II)가 궁전을 매입하고 확장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확장은 그의 아들인 아우구스트 3세 국왕이 완성했습니다. 19세기 초에는 바르샤바 리체움이 사스키 궁전에 자리했는데, 프레데리크 쇼팽의 아버지 미코와이 쇼팽(Mikołaj Chopin)이 가족과 함께 궁전 내에 거주하며 프랑스어를 가르쳤습니다. 궁전은 1842년에도 한 차례 더 개축되었습니다.
폴란드가 독립을 회복한 후에는 폴란드군 총참모부가 궁전에 입주했습니다. 1925년에는 건물의 좌우 대칭 날개를 연결하는 열주 회랑이 있는 아케이드에 무명 용사의 묘가 조성되었습니다. 당시 궁전은 뒤편으로는 사스키 정원, 앞으로는 사스키 광장 사이에 위치해 있었으며, 유제프 피우수츠키(Józef Piłsudski) 사후 이 광장은 그의 이름을 딴 광장으로 개칭되었습니다.

1919년경 사스키 궁전과 주변 지역의 항공 사진
사스키 궁전과 관련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단연 에니그마(Enigma)입니다. 1932년 12월, 바로 이 궁전의 벽 안에서 독일 암호 기계 에니그마의 코드가 처음으로 해독되었습니다. 이후 수년간 암호 해독 작업이 이어졌으며, 1937년 총참모부 암호국 독일 담당 부서가 새롭게 특별 설계된 청사로 이전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944년 독일군이 바르샤바 봉기를 진압한 뒤, 사스키 궁전은 바르샤바 도시에 대한 계획적 파괴 작업의 일환으로 독일군에 의해 폭파되었습니다. 무명 용사의 묘가 있던 중앙 아케이드의 일부 조각만이 살아남았습니다.
1989년 이후 궁전 재건축에 대한 논의가 여러 차례 이루어져 왔으며, 이번 이사진 임명으로 그 오랜 숙원이 드디어 실행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갤러리
- 18세기의 사스키 궁전
- 1944년의 피해
- 1934년의 궁전
- 1919년 이전 사스키 광장에서 바라본 궁전 정면
- 1895년경 사스키 정원 쪽에서 바라본 궁전
- 1920년대 사스키 궁전의 조감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