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미국 국무부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 계획을 확인한 최초의 전문, 언제 도착했을까?

나치 독일이 유럽의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몰살하기로 한 계획, 이른바 '최종 해결(최종 솔루션)'의 존재가 처음으로 미국 정부에 공식 전달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이던 1942년이었다. 그 출발점이 바로 '리그너 전문'이다.

리그너 전문: 1942년 8월 8일

1942년 8월 8일, 스위스 제네바에 머물던 세계 유대인 회의(World Jewish Congress) 대표 게르하르트 리그너(Gerhart Riegner)는 신뢰할 만한 독일 내 정보원에게서 입수한 소식을 바탕으로, 나치 최고 지도부가 독일 점령지의 유대인 약 350만~400만 명을 몰살할 계획을 논의 중이라는 경고 전문을 작성했다. 이 전문은 미국 영사관과 영국 외교 채널을 거쳐 뉴욕의 랍비 스티븐 와이즈(Rabbi Stephen Wise)와 런던의 시드니 실버먼(Sidney Silverman) 의원에게 각각 전달되었다.

국무부의 초기 대응: 회의적 시선과 지연

전문은 곧이어 워싱턴의 미국 국무부에도 도착했지만, 국무부 관계자들은 내용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추가 확인 없이는 유포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와이즈에게 원문을 넘기는 일도 지연시켰다. 한편 영국 경유로 사본을 접한 와이즈는 1942년 8월 28일에야 전문의 내용을 알게 되었고, 이를 정부와 언론에 공개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공식 확인: 1942년 11월

결국 1942년 11월 24일, 미국 국무부는 나치가 유대인 학살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같은 날 와이즈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 소식을 세계에 알렸다. 이로써 홀로코스트의 실상이 연합국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확인·공표된 것이다.

역사적 의의

리그너 전문은 홀로코스트의 실체가 연합국에 최초로 공식 보고된 순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정부가 이 경고를 초기에 경시하고 구체적인 구원 조치를 미룬 점은 전후까지 큰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러한 교훈은 이후 국제 인권 및 난민 보호 체제를 재정립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