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미국 정부는 다양한 외교 및 정보원으로부터 강제 수용소 설치, 대량 체포, 유대인 분리 및 굴욕을 포함한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대한 보고를 받았습니다.
1942:탈출한 수감자, 폴란드 지하 저항군, 유대인 조직의 정보를 포함하여 잔학 행위에 대한 보다 자세한 보고서와 목격자 기록이 미국에 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1942년 1월:미국 재무부는 스위스의 세계 유대인 의회 대표인 게르하르트 리그너로부터 "리그너 전보"로 알려진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이 전보에서는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한 "최종 해결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1942년 12월:미국 국무부는 폴란드 망명 정부로부터 점령된 폴란드의 유대인에 대한 나치 범죄를 자세히 설명하는 "폴란드 백서"로 알려진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1943년 11월:미국 정부는 유대인 대량 추방 및 학살 계획을 논의한 "회틀 전보"로 알려진 독일 외교 메시지를 가로채서 해독했습니다.
나치의 잔혹 행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증거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과 코델 헐 국무장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의 일부 핵심 인사들은 유대인 박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거나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1944~1945년 나치 강제 수용소가 해방되고 홀로코스트의 전체 규모가 밝혀진 후에야 대량 학살의 진정한 공포와 규모가 미국 대중과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