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캐나다인들, 그 이야기

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캐나다인이 실제로 존재합니다. 캐나다는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유럽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었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강제수용소에 갇힌 캐나다 국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캐나다인들은 어떻게 수용소에 수감되었을까?

전쟁 발발 당시 유럽에 체류하던 캐나다 시민, 포로가 된 군인, 그리고 유럽에 친척을 둔 유대인 이민자 가정 출신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나치의 손아귀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유대계 캐나다인 중에는 고향을 방문했다가 전쟁 발발로 귀국길이 막히고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여러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사례가 있었습니다.

추정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캐나다 시민은 약 1,000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약 600명이 해방의 순간까지 살아남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증언을 통해 역사를 전한 생존자들

막스 아이젠(Max Eisen)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막스 아이젠은 1944년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고, 가족 중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잔혹한 죽음의 행군을 견뎌내고 1945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뒤 캐나다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평생 학교와 공공장소에서 홀로코스트 목격담을 전했으며, 회고록 『By Chance Alone』은 2019년 CBC 캐나다 리즈(Canada Reads) 최종 선정작으로 뽑히며 널리 알려졌습니다.

네이트 라이프지거(Nate Leipciger)

폴란드 출생의 네이트 라이프지거는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등 여러 수용소를 거치며 살아남아 1948년 캐나다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토론토에서 교육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학생들에게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알렸고, 청소년들이 폴란드의 수용소 유적지를 방문하는 '마치 오브 더 리빙(March of the Living)' 프로그램에도 오랫동안 동행하며 후대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수용소 밖에서 펼쳐진 구출 활동

새뮤얼 브론프먼(Samuel Bronfman)과 같은 캐나다 유대인 지도자들도 목숨을 건 싸움을 함께했습니다. 러시아 제국(현 몰도바) 출생으로 어린 나이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한 브론프먼은 사업가이자 자선사업가로 성공했으며, 캐나다 유대인 회의(Canadian Jewish Congress) 회장을 역임하며 나치 점령하 유럽의 유대인 구출과 난민 지원 활동에 재정적·조직적으로 크게 기여했습니다.

생존자들이 남긴 유산

해방 후 캐나다에 정착한 생존자들은 단순히 과거의 참혹함을 견뎌낸 사람들을 넘어,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보존하고 교육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학교 강연, 증언 영상, 회고록 출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비극이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으며, 그들의 증언은 오늘날 캐나다 홀로코스트 교육과 추모 문화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약 600명의 생존자가 남긴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관용과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