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1337~1453) 동안 프랑스군이 가장 두려워한 존재는 바로 영국군의 궁수들이었다. 1346년 크레시 전투, 1415년 아쟁쿠르 전투 같은 격전에서 그들의 위력은 여실히 증명되었다. 당시 궁수들이 어떻게 훈련되었는지를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사료에 남은 삽화들을 통해 그들의 복장, 장비, 갑옷에 대한 정보를 엿볼 수 있다. 다만 활, 화살대, 팔 보호대 등 가장 오래된 유물들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어, 오늘날의 지식 상당 부분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연구될 수밖에 없었다.
활 – 장비의 기본
중세에 사용된 활은 (잉글리시) 롱보우(longbow)라고 불린다. 제작에는 주목(yew) 목재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상인들은 유럽 각지에서, 특히 스페인과 후에는 이탈리아(베네치아)에서 목재를 수입했다. 이상적인 활은 사수의 키보다 한 뼘 정도 긴 것이었지만, 대량 생산 과정에서 활 장인들은 5피트 7인치~6피트 2인치(약 170~190cm)로 규격을 통일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1545년 침몰한 영국 군함 ‘메리 로즈호’에서 인양된 활들은 이보다 약 3~4인치 더 길었다.
활은 바깥면이 등, 안쪽면이 배가 되도록 만들어져 세로 단면이 ‘D’자 형태를 이룬다. 당시 활의 당김 무게는 80~120파운드(약 36~54kg)에 달했으니, 궁수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강한 체력의 소유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오늘날 활의 당김 무게는 보통 40~60파운드 수준이다.
활을 날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밀랍이나 기름을 발라 관리했으며, 궁수들은 리넨(아마포) 커버에 넣어 운반했다. 이 무기는 위력적인 데다 제조 비용이 저렴해 큰 인기를 누렸다. 장인은 삼실을 꼬아 현을 만들고 중앙 부분을 추가로 감아 보강했다. 활은 밀랍, 기름 또는 특수 접착제로 습기로부터 보호했다. 현이 끊어지는 경우에 대비해 사수들은 예비 현을 투구 속에 보관했는데, 외부 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궁수의 화살
화살대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메리 로즈호’에서 발굴된 것들은 길이가 약 30인치(70~80cm)이다. 현을 단단히 물리기 위해 화살 끝부분에 결을 가로질러 홈을 파냈다. 그다음 거위, 공작, 백조, 타조 등의 깃털을 붙이고 가는 삼실로 감아 고정했다. 가장 흔한 촉은 좁고 길며 날카롭고, 미늘(바브)이 달린 형태였다.
모든 궁수는 ‘시프(sheaf)’라 불리는 24발 묶음의 화살을 장비했으며, 전투에 따라오던 수송 마차에서 보급받았다. 전투가 중단되면 사수들은 흩어진 화살을 주워 모으고, 필요하면 촉을 갈아 끼웠다. 연구진은 ‘메리 로즈호’에서 각인이 새겨진 가죽 팔 보호대도 발견했다. 전사들은 이를 가죽끈과 버클로 팔에 고정했다.
흥미롭게도 궁수들이 손가락이나 손을 보호하는 장구를 착용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로 미루어 그들이 놀라운 굳은살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삽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수들이 오늘날처럼 세 손가락이 아니라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으로만 현을 당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군은 이 두 손가락을 잘라 궁수들이 활을 못 당기게 하겠다고 협박했고, 이에 맞서 영국군은 프랑스군을 도발하려고 검지와 중지를 내보였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심각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제스처의 유래다. 다음에 맥주 두 잔을 주문할 때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복장과 갑옷 – 궁수를 구별하는 특징
몸을 보호하기 위해 대부분의 궁수는 감배슨(gambeson), 즉 누비 갑옷을 착용했다. 원래 무릎 길이였으며 손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통통한 소매가 달려 있었다.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스커트는 짧아졌고, 소매는 얇아지거나 분리형으로 바뀌었다. 이후에는 어깨 패드나 전완부 보강재를 넣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초기의 누비 선은 세로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가로 누비선과 마름모꼴 무늬가 더해졌다. 또한 궁수들은 감배슨 안이나 겉에 체인메일 셔츠(사슬 갑옷)를 함께 입었다. 15세기에는 일부가 흉갑(breastplate)이나 브리간딘(brigandine)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도 했다.
신발은 다양한 형태의 가죽 구두나 부츠였다. 머리에는 쇠사슬(아방테유) 목 보호대가 달린 금속 바시네트(bascinet) 투구를 쓰거나, 금속 하나로 베어낸 원뿔형 헬멧, 혹은 철·뿔·고래수염을 여러 겹 쌓아 만든 헬멧을 썼다. 1450년대 이후 궁수들은 주로 바이저(가면) 없는 살레(sallet) 투구를 착용했다.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아주 짧았다. 행군 중이나 진영에서는 후드(gugel), 모자, 모피 모자 등을 썼다. 옷에 꿰맨 각종 휘장을 보면 어느 카운티(주)나 도시 소속인지 구별할 수 있었다. 15세기 중반부터는 앞뒤로 큰 빨간 성 조지의 십자가가 그려진 흰색 민소매 조끼만으로도 궁수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장비와 무장 – 궁수의 소지품
귀족 가문에서는 모든 추종자들이 주군에게 무기, 갑옷, 장비를 지급받았으며, 필요한 자원은 복무하던 도시나 카운티에서 충당되었다. 기본 장비는 활, ‘화살 한 다발’(24발의 화살), 검, 한 개 이상의 칼, 때로는 작은 방패인 버클러(buckler)로 구성되었다. 개별 추가품으로는 후드, 수리 키트, 십자가, 물병 등이 있었다.
적이 너무 빨리 접근할 경우를 대비해 근접전 준비도 필요했다. 일부 궁수는 검 대신 전투 도끼, 둔기(메이스), 팔치언(falchion)으로 싸웠다. 카운티나 도시가 말을 지급하지 않으면 궁수들은 걸어서 전투에 임했다. 갑옷의 대부분은 수많은 마차나 짐말에 실려 운송되었다. 소지품 중 일부는 약탈로 얻은 전리품이었고, 어떤 것들은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황금기의 끝 – 무기로서의 활의 종말
최초의 화기(firearms)가 등장하자 활은 더 이상 충분히 효과적이지 못했고, 결국 대체되었다. 게다가 훌륭한 궁수가 되기까지는 수년의 훈련이 필요한 반면, 총병·아르케부스병·머스킷병이 되는 데는 몇 달이면 충분했다. 이후 활의 용도는 주로 스포츠와 여가 활동으로 좁혀졌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