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술탄 압드 알하피드가 일련의 내란 끝에 모로코의 주권을 프랑스에 양도하면서, 스페인은 북부 지역을 보호령으로 확보했다. 테투안을 수도로 하는 스페인 보호령 모로코는 다섯 개 지역으로 나뉘었고, 스페인군은 도로와 철도 건설 등 근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리프 지방의 부족들은 술탄의 종교적 권위만 인정할 뿐 정치적 복종은 거부하며, 1927년까지 이어진 리프 전쟁을 촉발했다.
철수, 그리고 죽음의 계곡
1924년 11월 19일 수요일, 새벽부터 찬비가 거세게 내렸다. 체우안(당시 스페인 표기 '체루타')에서 테투안까지 40km가 넘는 산악 도로를 따라 스페인군 병력이 긴 열을 이루며 후퇴하고 있었다. 세우타 군사령부의 전선을 재편하고 리프족과의 전투 병력을 줄이기 위한 철수 작전이었다.
후퇴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고지의 진지에서 길을 감시하던 수비대들이 본대가 무사히 지나간 뒤 차례로 철수하는 방식이었다. 체우안에서 가장 늦게 철수한 세라노 오리베 장군 휘하 부대는 성공적인 철수를 완수하고 장군 본인이 전사하는 대가를 치렀다. 체우안, 샤우엔, 다르아코바의 카빌족이 연합해 절벽과 미잘 강 계곡을 따라 집요하게 추격하며 산발적인 사격을 가했다. 마치 21세기 전 누미디아 기병 마시니사가 로마군에게 구사했던 전술처럼, 적을 지치게 하고 전력을 서서히 갉아먹는 방식이었다.
진창이 된 길 위로 부상자와 물자를 실은 트럭, 포병과 텐트를 실은 노새, 그리고 추위와 굶주림, 빗발치는 유탄에 지친 병사들이 뒤섞여 나아갔다. 테투안 비행장의 브리스톨 F-2 전투기들이 공중 엄호를 해줄 수 있었겠지만, 폭풍우와 낮은 구름 때문에 그들은 지상에서 홀로 싸워야 했다.
하마라 협곡의 최후 방어진지
스페인군 종대가 하마라 협곡(Garganta de Hámara)에 다다랐을 때, 도로를 내려다보는 작은 고지의 블록하우스가 누군가 성급하게 버리고 간 탓에 이미 리프족 카빌 소총수들의 마우저 총구가 모래주머니 사이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천둥소리에 묻혀 첫 총성이 울리자, 종대는 황급히 도랑으로 엎드려 납탄 우박을 피했다. 후미 부대가 집중 사격을 받는 와중, 일부 병사가 고지 탈환을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몇십 미터 앞에서는 미구엘 프리모 데 리베라 중령(원문 'Early'는 오역으로 보임, 실제로는 프리모 데 리베라 또는 정규군 지휘관)의 정규군이 알하마라 다리를 사수하며 종대의 마지막 병력이 건너게 하고 있었다. 한편, 외인 제대(Tercio de Extranjeros) 제1반데라 제1중대장 파블로 아레돈도 아쿠냐 대위는 다리 쪽 블록하우스를 탈환해 진지를 구축하고, 다리 쪽에서 다리를 엄호하고 있었다.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병사의 어깨에 의지해 명령을 내리며, 제1중대는 적의 화력을 자신들에게 집중시켰다. 덕분에 제6반데라 군단병들과 세우타 정규군, 그리고 종대의 주력이 비교적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최후의 기관총 중대가 다리를 건너자, 아레돈도의 군단병들은 포위망에 갇혔다. 부상자들이 쓰러지고 전사자가 속출했지만, 군단 신조('전장에서 전우를 버리지 않는다')에 따라 생존자들은 백병전으로 맞서며 최후의 순간까지 버텼다.
아레돈도 대위의 최후
아레돈도 대위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순간, 그는 치명상을 입고 기어가며 루비 권총을 쏘아댔고, 그의 기사(knights)라 불리던 군단병들이 리프족의 총탄에 하나둘 쓰러졌다. 5km 떨어진 조코아르바의 임시 진지에서 총성이 멎는 침묵을 들으며, 제1중대의 비극적 최후를 직감했다. 그의 시신과 부하들의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다.
두꺼운 구름 사이로 햇살 한 줄기가 버려진 헬리오그래프(태양광 통신기) 파편에 닿아 희미한 섬광을 보냈다. 마치 작별 인사처럼 몇 초간 지속되다 사라졌다. 이들은 동료가 살기 위해 죽어간 것이다. 살아남은 군단병들은 경건한 침묵 속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죽음의 영'을 읊조렸을 것이다.
파블로 아레돈도 아쿠냐: 두 개의 월계수 십자가를 받은 영웅
파블로 아레돈도 아쿠냐(Pablo Arredondo Acuña) 대위는 1920년 9월, 창설된 지 얼마 안 된 외인 제대 제1반데라 제1중대장으로 부임해 전사할 때까지 지휘했다. 1913년, 23세에 아라필레스의 제9헌병대 소위로 임관한 그는 라우시엔 전투에서의 공로로 스페인 최고 무공 훈장인 산 페르난도 월계수 십자가(Cruz Laureada de San Fernando)를 받았다. 1914년 멜리야 원주민 정규군, 1916년 제58알칸타라 보병연대, 제50바드라스 보병연대를 거쳐 대위로 진급했다.
1921년 6월 29일, 무뇨스 크레스포 진지에서 치명상을 입어 군은 그를 부상 후유증으로 보행이 곤란하다며 제대시키려 했으나, 1924년 법원 투쟁 끝에 복권되어 제1반데라로 복귀했다. 화려한 군 경력은 1924년 11월의 추운 날, 리프족의 총탄 하나로 끝났다. 그의 희생은 두 번째 월계수 십자가로 보답받았으며, 이는 스페인 역사상 단 다섯 명만 달성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 AA. VV. (2015) 알오세이마 상륙작전, 1925, 데스페르타 페로 컨템포러리, 11호.
- 아레돈도 곤살레스, P. (2011) "영웅의 군력: 파블로 아레돈도 아쿠냐 대위 (상)", 보병 기념지, 63호, 59-65쪽.
- 아레돈도 곤살레스, P. (2012) "영웅의 군력: 파블로 아레돈도 아쿠냐 대위 (하)", 보병 기념지, 65호, 88-93쪽.
- 참모본부 (1920-1925?) 베니 이데르, 베니 아로스, 베니 하산, 아즈마스 약도, 1:100,000, 모로코 지리위원회.
- ABC 신문 아카이브 (1924) "모로코 내 스페인 행동. 오발탄으로 세라노 오리베 장군 전사. 체루타에서 조코 엘 아르바까지 철수 완료", 11월 20일, 9면.
- ABC 신문 아카이브 (1924b) "모로코 내 스페인 행동. 티피수인 전선 지속 교전, 적 11구 우리 수중 확보", 11월 28일, 7-8면.
- 판도 데스피에르토, J. (2018) "스페인-모로코 기병, 하마라 성벽을 무너뜨리다", 육군, 929호, 79년, 4-12쪽.
- 육군 지리국 (1944) 북부 모로코 지도, 4호 시트, 셰프샤우엔, 1:100,000, 육군 지리국 공장.
본 기사는 제2회 데스페르타 페로 역사 마이크로에세이·마이크로스토리 공모전(마이크로에세이 부문) 출품작입니다. 기사 내용의 기록, 진실성, 독창성은 전적으로 저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