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나폴레옹의 유해 귀환: '회귀의 재(Le retour des cendres)'와 제2제국의 서막

1815년 워털루 전투 패배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의 유배 생활, 1821년 사망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그러나 프랑스 본토에서 부르봉 왕정 복고(제2차 왕정 복고)의 압제적 정책과 귀족 특권 부활, 장교들의 강제 퇴역과 반봉급 생활, 임금 하락과 노동자 계층의 고통, 그리고 산업화 초기의 혼란 속에서 나폴레옹 시대는 '황금기'로 미화되기 시작했다. 황제는 '민중의 아버지'로 추앙받았고, 보나파르티즘은 강력한 정치적 흐름으로 부상했다.

나폴레옹 유해 송환 논쟁의 전개

1830년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가 무너지고 오를레앙 가문의 루이 필리프가 '시민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보나파르티스트의 위력을 인지하고 방돔 광장 기둥 꼭대기의 나폴레옹 동상을 복원하는 상징적 조치를 취했다. 당시 로마에 머물던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 라몰리노는 "황제가 파리로 돌아왔다!"라고 감격했다.

그러나 1830년 10월 2일, 나폴레옹의 유해를 파리로 모셔와 방돔 광장 기둥 아래 안장하자는 제안은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7월 왕정은 자유주의적 외피를 썼으나 실상은 부르봉 왕정만큼이나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었다. 루이 필리프 자신도 프랑스 혁명기 부친 처형과 형제들의 투옥, 긴 망명 생활로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다.

티에르의 정치적 승부수와 영국의 허가

1840년 5월, 역사가이자 내각수반 아돌프 티에르는 루이 필리프에게 영국 정부에 나폴레옹 유해 송환을 요청하자고 제안했다. 왕실은 처음에 반대했으나, 티에르가 "프랑스의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고 보나파르티스트 및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지지를 얻는 정치적 수완"임을 설명하자 마지못해 동의했다.

내무장관 샤를 드 레뮈자이 하원 제출 시 의원들의 열광적 지지로 100만 프랑의 예산이 승인되었다. 안장 장소로는 방돔 광장과 생드니 왕실 묘지가 거론되었으나, 결국 앵발리드(Les Invalides)로 결정되었다. 이는 나폴레옹을 군인으로서 개별화하고 절대주의 왕정과의 차별화를 의도한 것이었다.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알퐁스 드 라마르틴은 "자유의 적을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세인트헬레나에서의 발굴과 귀환 항해

영국의 허가를 얻어 오를레앙 가문의 프랑수아 드 오를레앙, 주앵빌 왕자(1816-1900)가 특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장의사 노릇"을 거부했으나 결국 임무를 맡아 1840년 7월 7일 툴롱 항을 출항했다. 함대는 프리깃함 '라 벨 풀(La Belle Poule)'과 코르벳함 '라 파보리트(La Favorite)'로 구성되었으며, 베르트랑 장군, 구르고 장군, 라스 카즈의 아들 에마뉘엘, 생드니(알리), 롱우드 생존 하인 등이 동행했다.

주앵빌의 무관심으로 항해가 3개월 넘게 지체되어 10월 8일 세인트헬레나에 도착했다. 총독 조지 미들모어는 15일 유해 인도를 허가했다.

놀라운 보존 상태와 관 구조

관 발굴 및 개관 결과, 시신은 군복, 모자, 훈장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으나 부츠만 갈라져 발가락이 드러나 있었다. 시신은 금색 'N'자와 "나폴레옹, 황제, 1821년 5월 5일 세인트헬레나에서 서거"라는 명문이 새겨진 새 관에 안치되었다(허드슨 로가 알았다면 분노했을 것이다). 총 중량 1,200kg에 달하는 다층 관 구조는 엄숙한 행렬로 항구까지 운구되어 '라 벨 풀'의 영예 구역에 안치되었고, 10월 18일 출항해 11월 30일 셰르부르 항에 도착했다.

정국 변화와 맞이한 유해: 티에르의 실각과 술트 원수의 내각

5월 제안 당시와 12월 귀환 시점의 프랑스 정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티에르는 이집트 문제(메흐메트 알리 지원)를 놓고 영국과 대립하다 10월 29일 실각했고, 루이 필리프는 이를 기꺼이 수용했다. 후임 내각수반에는 장 드 디외 술트 원수(1769-1851)가 임명되었다. 그는 1815년 벨기에 전역에서 나폴레옹의 무능한 참모장으로 복무했고, 나폴레옹의 제1·제2 퇴위 후 루이 18세에게 충성을 맹세한 인물이었다. 강력한 실세로는 프랑수아 기조(1787-1874)가 입각했는데, 그 역시 양대 퇴위 후 왕당파로 전향한 경력을 지녔다.

결국 두 왕당파(태생적 왕당파와 전향파)가 주도하는 내각이 황제의 유해를 맞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티에르가 예견한 정치적 파장이 이제는 신내각의 화해 정책, 특히 대영 관계에 부담이 되었다.

장례식: 군림하는 민중, 불참하는 외교단

장례식은 엄격히 군사 의식으로 치러지기로 결정되어 시민사회의 반발을 샀다. 유럽 열강 대사들은 나폴레옹 전쟁의 적국이었다는 이유로 참석을 거부하고 영국 공사관에 모여 연합전선의 결속을 과시했다.

준비가 미완성인 상태에서 12월 15일로 장례일정이 못 박혔다. 정부는 의식이 끝나면 정치적 열기가 식으리라 기대했으나, 이는 헛된 희망이었다.

센 강을 거슬러 앵발리드로: '황제의 마지막 비박'

셰르부르에서 증기선 '노르망디(Normandie)'로 르아브르까지, 다시 바지선 '라 도라드(La Dorade)'로 센 강을 거슬러 12월 14일 쿠르브브와 항에 도착했다. 술트 내각의 조급함이 민심을 잠재우리라 믿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수천 명의 군중이 강변을 따라 바지선을 뒤따랐고, 관이 하역되자 수백 명이 밤샘 호위를 요구하며 소동을 벌였다. 경찰이 허가하자 이들은 외투를 벗어 던지며 낡은 제국 군복 차림을 드러냈다. 장례식에 초청받지 못한 수백, 수천 명의 예비역 '그로나르(gronards, 불평병)'들이 자발적으로 '황제의 마지막 비박(야영)'을 벌였다.

12월 15일, 파리의 겨울: 80만 인파의 침묵과 함성

장례 행렬은 쿠르브브와를 출발해 뇌이 다리, 개선문을 지나 앵발리드로 향했다. 빅토르 위고도 참관했는데, 그는 『레 미제라블』 워털루 장 등을 통해 나폴레옹 신화 형성에 기여한 문인이다. 눈보라 치는 혹한에도 불구하고 약 80만 명의 인파가 행렬 경로의 발코니와 지붕을 가득 메웠다.

앵발리드 성당 내부는 왕실과 정치권 인사들로만 제한되었으나, 이들의 무관심 속에서 거행된 의식은 역설적으로 제국 시기 공화주의적 가치와 7월 왕정의 보수적 퇴행을 비교하는 기점이 되었다. 티에르의 예언대로 '거대한 정치적 실수'가 된 것이다.

몽세 원수의 마지막 임무

앵발리드 총독 장노 드 몽세(1754-1842)는 제국 원수 중 덜 빛나는 인물이었으나, 1814년 파리 방어와 마르몽의 배신 후 병력을 퐁텐블로로 이끌어 나폴레옹에게 합류시킨 충신이었다. 루이 18세의 네이 원수 재판 주재 압력을 거부하기도 했던 그는, 황제 유해를 맞이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생명을 연장해달라 부탁했고, 임무 완수 후 "이제 집으로 돌아가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 Bertrand, H.G.; Houdecek, F. (2021): Les cahiers du général Bertrand. Paris: Perrin.
  • Gourgaud, G.; Bourachot, Ch. (2002): Le Retour des Cendres de l'Empereur Napoléon. Paris: Arlea.
  • Lentz, Th. (2019): Bonaparte n'est plus! The world learned the death of Napoléon, July-September 1821. Paris: Perrin.
  • Poisson, G. (2004): L'Aventure du Retour des Cendres. Paris: Tallandier.
  • Tudoret, P. (2021): La gloire et la cendre: l'ultime victoire de Napoléon. Paris: Belles Lettres.
  • 전시: Napoléon n'est plus, l'exposition aux Invalides
  • 보고서: December 15, 1840: Retour des Cendres de Napoléon
  • Napoléon Bonaparte fait partie de nous.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연설, 프랑스 학술원, 나폴레옹 서거 200주년 기념(2021.5.5)
  • Napoléon "N" Adieu. 앙투안 드 콘 감독 영화 Monsieur N(The Last Battle, 2003) 중 유해 귀환 재현 장면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