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쥘 페리 법: 프랑스 무상·의무·세속 교육의 탄생

역사적 배경

  • 1833년 프랑수아 기조(François Guizot)가 발의한 '기조법'은 초등 교육의 감독과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 시기 공교육은 국가와 교회의 지원 아래 각 지방 자치단체(코뮌)가 운영했습니다.
  • 제2제정 시기에는 빅토르 뒤뤼(Victor Duruy)에 의해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남학교와 여학교가 구분되어 운영되었습니다.
  • 제3공화국 출범 후 집권한 공화파는 프랑스 국민 모두를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하고자 했고, 학교는 그들의 이념을 전국에 널리 확산시키는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 1879년 정부는 종교계 인력을 대체할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사범학교를 설립했습니다.
  • 1881년 기준으로 쥘 페리(Jules Ferry)는 1879년부터 공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적용 기간: 1881~1886년

쥘 페리 법: 프랑스 무상·의무·세속 교육의 탄생

핵심 인물

쥘 페리(Jules Ferry):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정치가이자 공교육부 장관으로, 무상·의무·세속 교육의 기반을 마련한 '페리 법'의 주도자입니다.

입법 경위

세속적 공화주의 학교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쥘 페리의 개혁은 여러 단계에 걸쳐 다수의 법률로 공포되었습니다.

먼저 1881년 6월 16일의 법은 교육비 부담 없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학교 교육이 무상화되었습니다. 이어서 1882년 3월 28일에는 학교 교육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었습니다. 이 법은 공립 교육기관에서 만 6세부터 13세까지의 남녀 아동에 대해 교육을 의무화하고 세속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교육은 1881년 6월 16일 법에 따라 '교직 능력증서'를 취득한 교원들이 담당했습니다. 당시에는 성직자와 수녀들도 능력증서를 취득하여 공립 교육기관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입법들은 해당 법의 공포를 주도한 장관의 이름을 따서 '페리 법(Les lois Ferry)'이라 불립니다.

그 후 1886년 고블레 법(Goblet Law)은 초등 교육 조직과 관련해 1881년과 1882년의 법률을 보완했습니다. 이 법에 따라 공립학교의 교육은 오직 교직 능력증서를 소지한 비종교계(평신도) 교원에게만 맡겨졌으며, 종교인은 더 이상 해당 증서를 취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만 2세부터 6세까지의 아동을 수용하는 유치원(모친학교)이 설립되었고, 의무 교육 기간인 만 6세부터 13세까지의 아동은 초등소학교에서 교육받았습니다. 만 13세 이상의 아동에게는 교육이 더 이상 의무가 아니었지만, 희망하는 학생은 상급 소학교에서 계속 공부할 수 있었으며, 이곳에는 주로 노동자 계층 출신의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했습니다.

영향과 결과

  • 보편적 취학의 실현: 페리 법은 큰 성공을 거두어 아동 취학률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교육은 프랑스어로만 진행되었고 지역 언어는 학교 내에서 금지되면서, 프랑스 전역에서 단일 언어가 사용되는 통합된 국가 정체성이 형성되었습니다. 학교를 통해 파리에서 가장 먼 지방까지 공화주의 이념이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 교회 세력의 약화: 교육 현장에서 배제된 교회는 세속화 정책으로 권력 상실을 겪었으며, 이는 1905년 '정교분리법'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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