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진주만에서 일본 제국 해군이 미 해군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하고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정부는 니세이(nisei)(2세)와 산세이(sansei)(3세) 등 미국 시민권을 보유한 일본계 주민 전원의 이송과 수용을 명령했습니다. 공식 명칭은 재정착 캠프(relocation camp)였지만, 실상은 강제 수용소나 다름없었습니다.
진주만 공격에 하와이 거주 일본인의 협조가 개입했다는 의혹, 그리고 일본계 시민들이 적국을 돕는 '제5열(fifth column)'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수용소 설치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1942년, 구금과 이송을 전담하는 기관인 전쟁 재배치 당국(War Relocation Authority)이 설립되어 7개 주에 10개의 캠프를 건설했고,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강제 이송되었습니다.

한편 하와이에서는 일본계 시민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넘었기 때문에 억류 조치가 본토만큼 엄격하게 시행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억류 조치와 병행하여 전쟁부는 모든 일본계 군인을 현역에서 제외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하와이 방위군에는 수백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소수 인원은 위스콘신주의 수용소로 이송되어 수많은 시련을 견뎌내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미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해야 했습니다.
1943년 2월 1일, 충성심이 입증되자 미국 정부는 해당 징집 금지 명령을 철회하고 일본계 미국인 2세·3세의 군 입대를 허용했습니다. 입대 금지가 해제되자 특히 하와이에서 수많은 자원입대자가 몰려들었고, 거의 전원이 일본계 출신 병사로 구성된 제442연대 전투단이 창설되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제442연대에 배속된 1만 4,000명의 일본계 병사들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전선에서 독일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제442연대 전투단
역사의 아이러니 — 가족이 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 이 연대는 미국 역사상 공로와 용맹으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부대가 되었습니다. 총 1만 8,143개입니다. 그중에는 미군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 21개가 포함됩니다.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시민 자유법(Civil Liberties Act)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억류되었던 일본계 미국인 시민들에게 보상을 지급하며, 생존한 수용자 각각에게 2만 달러의 보상금을 보장했습니다. 나아가 법은 당시 수용이 "인종적 편견, 전쟁 히스테리, 그리고 정치 지도력의 실패"에 근거한 것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출처: 제442연대 전투단, 명예훈장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