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괴벨스마저 물러서게 만든 여성들 – 1943년 베를린 '로젠슈트라세 시위'의 실화

아르헨티나 '5월 광장의 어머니들', 쿠바의 백색 의상의 여인들(Ladies in White)처럼, 나치 독일의 심장부에서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남편과 자식을 구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항의를 벌였던 아내들과 어머니들 —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1943년 2월 27일, '파브리카크치온(Fabrikaktion)' 작전

1943년 2월 27일, SS와 게슈타포는 파브리카크치온(Fabrikaktion), 이른바 '최종 습격'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그들은 베를린의 거리와 가옥, 공장을 샅샅이 수색해 유대인들을 포위하고 폴란드 내 강제수용소로 이송할 계획이었습니다.

약 1,700명의 유대인이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베를린 미테 지구 로젠슈트라세(Rosenstraße)의 유대인 공동체 센터에 유폐되었습니다. 이들이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비유대인 독일인과 결혼한 유대인 배우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들의 행방을 알게 된 어머니들과 아내들은 로젠슈트라세 센터 앞에 운집해 정보를 요청하고 설명을 요구했으며, 그 자리를 단호히 지켰습니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우리 남편들을 돌려줘!"

괴벨스마저 물러서게 만든 여성들 – 1943년 베를린  로젠슈트라세 시위 의 실화

로젠슈트라세 유대인 공동체 센터

600명에서 1,000명으로 커진 시위

둘째 날에는 이미 600여 명의 여성이 구금에 항의했습니다. 셋째 날에는 1,000명을 넘어섰고, 친척·친구·이웃을 지키려는 독일 혼혈 여성들까지 잇달아 합류하며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습니다.

독일 당국은 센터를 지키던 SS 대원들에게 시위대를 몰아내기 위해 허공에 발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여성들은 인근 골목으로 흩어졌지만, 총성이 멎자마자 다시 모여들었습니다. 두 번째 발포가 이루어졌을 때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선전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는 베를린 한복판에서 비유대인 독일 여성들을 사살하는 일이 도시 전체를 나치 정권에 반대하도록 부추길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접근을 차단하려 인근 트램 정류장을 폐쇄하는 등의 조치도 시도되었지만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시위는 더욱 커져갔습니다.

괴벨스마저 물러서게 만든 여성들 – 1943년 베를린  로젠슈트라세 시위 의 실화

영화 《로젠슈트라세(Rosenstraße)》 스틸컷

괴벨스의 후퇴

결국 괴벨스는 마음을 누그러뜨렸고, 이미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35명의 유대인들을 센터로 되돌려 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괴벨스는 극도로 잔인했지만, 어리석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방금 패배한 참이었고, 제국의 수도 베를린 자체에서 또 다른 전투를 감당할 여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약 일주일간의 항의 끝에 그는 로젠슈트라세에 억류된 모든 유대인을 석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여성들은 나치의 야만에 맞서 싸웠고, 마침내 그것을 물리쳤습니다.

로젠슈트라세에 억류되었던 유대인 대부분은 전쟁을 생존해 살아남았습니다.

'여성들의 블록' 기념비

1995년, 조각가 잉게보르크 훈칭거(Ingeborg Hunzinger)가 《블록 데어 프라우엔(Block der Frauen)》, 즉 '여성들의 블록'이라는 기념비를 세워 로젠슈트라세의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괴벨스마저 물러서게 만든 여성들 – 1943년 베를린  로젠슈트라세 시위 의 실화

출처: 홀로코스트 연대기(Holocaust Chronicle), 더욱 강력한 힘(Mightier Than the Sword), 제2차 세계대전의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