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일상은 소음으로 가득합니다. 집을 나서는 순간 자동차 경적과 대중교통 직원들의 외침, 휴대전화 통화가 쏟아지고, 업무·공부·사교 모임 등 삶의 모든 영역이 끊임없는 소리의 소란 속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말하지 않는 시간'은 사실상 사치품이나 다름없습니다. 미사, 밤샘 기도, 혹은 더 이상 함께 있지 않은 이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잠시 요청되는 유명한 '침묵의 순간'조차 60초가 지나기 전에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다시 말하고 소음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목소리를 내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뛰어넘어, 엄격한 영적 이유로 평생 침묵 서약을 지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도 태생의 신비주의자 메허 바바(Meher Baba)입니다. 매년 7월 10일에 지켜지는 '침묵의 날(Silence Day)'은 그의 침묵 서약에서 비롯된 기념일입니다. 그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메허 바바, 그는 누구인가
메허 바바의 생애는 1894년 2월 25일 인도 푸나(Poona, 현 푸네)에서 시작됩니다. 본명 메르완 셰리어 이라니(Merwan Sheriar Irani)는 조로아스터교 전통 속에서 자랐으며, 부모 역시 이슬람 밀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기독교 학교에 다녔고, 훗날 푸나의 데칸 대학(Deccan College) 재학 중 운명을 바꾸는 우연한 만남을 겪습니다. 저명한 무슬림 신비주의자 하즈라트 바바잔(Hazrat Babajan)의 거처 앞을 자전거로 지나가던 어느 날, 그녀는 소년에게 손짓했고 그가 다가서자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은총의 표시는 어린 메르완을 형언하기 어려운 황홀경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후 그는 힌두교의 영성으로 방향을 정했고, 쉬르디(Shirdi)의 사이 바바(Sai Baba), 그다음에는 사코리(Sakori)의 우파스니 마하라즈(Upasni Maharaj)에게 연달아 제자로 들어갔습니다. 두 스승 모두 메르완이 이 시대의 아바타, 즉 신성이 깃드는 새로운 그릇임을 확신했습니다.
힌두교에서 '아바타'란 무엇일까
힌두교에서는 지고신 비슈누가 우주의 질서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때때로 지상에 강림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힌두교도들은 라마, 크리슈나, 심지어 붓다까지도 비슈누 신의 인간 화신인 '아바타'로 간주합니다. 20세기 초 인도의 두 거장이 확신한 새로운 아바타는 다름 아닌 메르완이었습니다.
1921년, 우파스니 마하라즈는 이 젊은이가 아바타로서의 사명을 수행할 준비를 마쳤다고 선포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 '자비로운 아버지'라는 뜻의 메허 바바(Meher Baba)가 되었습니다.
세계적 중심지가 된 메헤라바드 공동체
1923년부터 그의 공동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버려졌던 군사 캠프를 정비·인수했는데, 이곳이 훗날 세계적 중심지가 된 '메헤라바드(Meherabad)'입니다. 그곳에는 무료 학교, 병원, 진료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쉼터 등이 설립되며 실질적인 봉사 활동이 펼쳐졌습니다.
1969년까지 이어진 침묵 서약
1925년 7월 10일부터 196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메허 바바는 단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알파벳 판(alphabet board)으로 의사소통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제자 집단인 '만달리(mandali)'가 해석해 말로 옮기는 특별한 손짓으로 소통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메허 바바는 자신의 침묵이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보편적 영적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보편적 사명과 맞닿은 개인적 서약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생전에 여러 차례 '단 한 단어로 침묵을 깨겠다'고 약속했고, 그 순간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구체적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모든 기록에 따르면 그는 죽는 순간까지 침묵을 지켰습니다. 일부 추종자들은 이 깨진 약속에 실망했지만, 다른 이들은 이를 믿음의 시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침묵의 날의 탄생과 오늘날의 의미
수년 동안 메허 바바는 추종자들에게 매년 7월 10일 금욕과 금식, 기도를 실천하며 침묵의 서약을 기념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생전 마지막 7월 10일에도 그는 추종자들에게 조용히 지내라고 당부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추종자 상당수가 이날을 '침묵의 날'로 지키며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선전 없이 남긴 사랑과 진리의 유산
메허 바바의 여정과 가르침은 전 세계 추종자들에게 깊은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는 대규모 공개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포교 활동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떤 선전이나 홍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라는 것이 그의 신조였습니다. 대신 그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사랑과 진리의 메시지로 삼아 주변에 널리 전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히피 운동과 플라워 파워가 만연하던 시절, 수많은 반항적인 젊은 학생들이 '인도의 메시아'를 숭배했습니다. 요구나 금전,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신앙 방식은 그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메허 바바는 인도에 수십만 명의 추종자를 두었고, 1971년 기준 미국에는 7천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대중문화, 특히 음악에 남긴 발자취
특히 현대 대중음악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광범위합니다. 영국의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작곡가, 록밴드 더 후(The Who)의 리더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hend)는 1971년 명곡 Baba O'Riley를 작곡했는데, 곡명은 메허 바바의 이름과 그의 음악적 영향 중 하나인 테리 라일리(Terry Riley)의 이름을 결합한 것입니다. 또한 1988년에는 미국의 아티스트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이 대표 히트곡 Don't Worry, Be Happy(걱정하지 마세요, 행복하세요)를 발표했는데, 이 곡의 제목 역시 이 신비주의자의 유명한 문구에서 따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