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에서 전차(戰車)는 기원전 5세기부터 전장에 등장했습니다. 주로 병사를 보호하는 이동식 방어 거점 역할을 했으며, 터널 굴착이나 참호 파기 같은 공병 작업에도 동원되었습니다.
이러한 초기 형태에서 발전하여, 서기 3세기경 '항상 남쪽을 가리키는 마차', 이른바 지남차(指南車)가 탄생했습니다. 나침반처럼 방위를 알려주는 장치였지만, 자침과 달리 차체가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더라도 포인터는 언제나 남쪽을 가리켰습니다.
지남차는 두 바퀴 위에 팔을 뻗은 인물 형상의 포인터를 올린 구조로, 이 포인터가 이동 중에도 늘 남쪽을 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항해용 나침반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확실하게 문서화된 최초의 지남차는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엔지니어 마준(馬鈞, 서기 200~265년경)이 제작한 것입니다. 그는 비단 직기 개량 외에도 지남차의 발명자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지남차는 자석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자침 나침반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대신 차동 기어(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하는 구동륜에 동일한 토크를 전달하는 장치)로 작동했습니다. 이는 자침 나침반의 등장보다 무려 7세기 이상 앞선 기술이었습니다.

출발 시 포인터를 수동으로 남쪽에 맞추면, 이후 차량이 회전할 때마다 기어 장치가 회전량을 상쇄하여 포인터가 차체와 무관하게 계속 남쪽을 가리키도록 유지했습니다. 즉 이 메커니즘은 일종의 추측 항법(dead reckoning)을 수행한 것으로, 방향성은 있지만 오차와 불확실성이 누적되기 쉬웠습니다.
포인터는 중간 기어를 통해 두 바퀴의 회전 속도 차이에 비례하는 속도로 도는 축에 연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차가 직진할 때는 두 바퀴가 같은 속도로 회전하므로 포인터가 움직이지 않고, 회전할 때는 바퀴 간 속도 차이가 생기면서 차동 장치가 포인터를 돌려 차체의 회전을 정확히 보상합니다.
후대 왕조 시대에는 마준의 지남차가 거리를 측정하는 주행거리계와 하나의 장치로 결합되기도 했습니다. 중국 사료에 따르면 지남차는 적어도 1300년경까지 간헐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문헌은 지남차의 기원이 훨씬 더 오래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서기 502년부터 577년 사이 심약(沈約)이 저술한 『송서(宋書)』, 즉 유송 왕조(중국 최초의 남부 왕조)의 역사서가 그것입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마준은 새 표본을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런 유물이 애초에 존재할 리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불신 속에서, 이미 사라진 옛 표본을 재현하는 데 나선 인물일 뿐이라고 합니다.

다만 당시의 지남차들은 성능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짧은 거리에서만 쓸모가 있었고, 여행 중에는 기어를 여러 번 다시 맞춰야 했을 것입니다. 5세기 말에는 조충지(祖沖之)라는 엔지니어가 한 대를 제작했는데, 수차례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는 동안에도 끝내 남쪽 가리킴을 멈추지 않을 정도로 정밀했다고 전해집니다.

어쨌든 지구 표면의 곡률 때문에 이런 장치는 근본적으로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짧은 여행에서는 오차가 작고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장거리 이동에서는 매우 불완전한 나침반으로 기능했을 것입니다.
만약 차동 기어로 구동되는 지남차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현지 평균시와 태양시의 차이를 보정하는 시계용 차동 장치를 만든 조지프 윌리엄슨(Joseph Williamson)의 기록상 최초의 차동 장치보다 수세기 앞선 셈입니다. 물론 안티키테라 메커니즘에도 차동 기어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마차는 현존하지 않지만, 베이징 역사 박물관과 타이베이(대만) 국립 고궁 박물관에서 원형을 상당히 충실히 재현한 복제품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캐나다 토론토의 온타리오 과학센터에는 실제로 작동하는 복제품 두 대가 전시되어 있으며, 두바이나 일본 등 다른 지역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