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들은 음식에 대해 깊이 사고한 민족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음식을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연회나 심포지엄, 개인 가정의 모임 등 사회적 교류의 핵심 행위로 여겼습니다.
그리스인의 하루 주요 식사는 훗날 로마인들이 케나(cena)라고 부른 저녁 식사로, 하루 중 8시~9시경에 먹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리스인들에게는 수저(고기를 자르는 칼 제외)나 냅킨이 없었고, 수프 등 액체 음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손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국물을 떠먹을 때는 속을 파낸 빵 조각을 숟가락처럼 활용했죠.
식사가 끝나면 손가락의 기름기를 빵 조각에 닦아내고, 그 빵을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일반적인 마무리였습니다.

음식은 대개 집주인이나 그의 지시를 받은 노예들이 준비했지만, 특별한 행사에는 전문 요리사를 고용했습니다. 당대 희극 작가들이 이들을 자주 언급할 정도로 전문 요리사의 수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리 예술의 정교함과 비법을 모두 갖춘 이들은 그리스 전역에서 큰 수요를 얻었으며, 자신들의 시그니처 요리를 선보이며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활동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명성이 높았던 인물은 요리책을 저술한 시칠리아 출신 요리사였습니다. 플라톤은 저서 고르기아스에서 미타이코스(Mithaecus)를 언급하는데, 그는 스파르타에서 활동했지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추방당한 인물입니다.
그의 저작 Ὀψαρτυτικός(요리의 기술)은 기원전 5세기 후반에 집필된 가장 오래된 요리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테나이오스가 학자들의 만찬(데입노소피스타이)을 통해 전해 준 단 하나의 요리법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데, 바로 '신타(Cinta, 학명 Cepola macroptalma)'라는 생선을 준비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요리사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역시 시칠리아 출신의 아르케스트라토스(Archestratus)입니다. 그는 기원전 4세기 중반 요리에 관한 논문을 저술했으며, 이 책은 Hedypatheia(쾌락), 미식학, 위장학, Deipnology 등 다양한 제목으로 불렸습니다. 원래 총 328행의 구절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56개의 단편만이 전해지며, 모두 낙라티스 출신의 아테나이오스가 서기 3세기 로마에서 집필한 학자들의 만찬에 수집되어 있습니다.
아르케스트라토스의 저작은 서사시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미식 여행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이 저작의 대부분은 생선 요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전채 요리와 와인에 관한 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존된 단편 중 육류는 토끼, 거위, 암퇘지 젖통 등 단 세 가지만 등장합니다. 크세노폰에 따르면 아테네 사냥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토끼 요리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은 조리법을 소개합니다:
그는 또한 진한 소스나 치즈·기름이 과도하게 들어간 조리법은 피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강한 치즈나 허브 기반의 소스는 오직 신선도가 떨어지는 생선에만 사용되었다는 것이죠.
'재료의 품질이 좋을수록 향신료는 적게 쓴다' — 이것이 그의 핵심 요리 철학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가장 가벼운 양념과 기름만 곁들인 삶기, 굽기, 직화 구이 같은 심플한 조리법을 선호했습니다.
아르케스트라토스는 그리스권 지중해 전역을 여행하며 각 지역의 특산물을 직접 맛보고 기록했으며, 품질과 양의 최적 조합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또한 모든 손님이 편안하게 음식을 음미할 수 있도록 연회 인원을 3~4명으로 제한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음식을 직접 준비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의 미식 예술이 어디서나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철학자들은 그가 시민들을 타락시킨다고 비난했는데, 아테나이오스가 수집한 기록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솔리의 크리시포스, 솔리의 클레아르코스 등이 남긴 그의 저작에 대한 경멸적인 언급이 확인됩니다:
흥미롭게도 현대에 '미식(Gastronomie)'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프랑스 시인 조제프 베르슈(Joseph Berchoux)는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이 책에서, 아테나이오스가 전한 아르케스트라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하여 소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