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고대 청동 사두마차의 유일한 생존자,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 '황금말'의 2000년 역사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 정문 위 갤러리에는 산 마르코의 말로 널리 알려진 4기의 대형 청동 말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경기장에서 가져온 이 조각상들은 대성당 자체보다 오래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작품입니다.

이 말들은 할리카르나소스 영묘(Halicarnassus Mausoleum)처럼 다른 고대 건축물을 장식했던 것과 유사한, 완전한 전차(쿼드리가)를 이루던 조각 기념물의 일부였습니다. 원래 어디에 세워져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개선문이나 다른 공공 건물을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작 연대에 대한 학계의 합의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조각가의 작품으로 보고 있으며, 다른 학자들은 서기 1세기에서 3세기 사이 로마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대 청동 사두마차의 유일한 생존자,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  황금말 의 2000년 역사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쓰인 비잔틴 문헌 파라스타세이스 신토모이 크로니카이(Parastaseis syntomoi chronikai)에는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기념물에 대해 "테오도시우스 2세 시대에 키오스 섬에서 온 4마리의 황금말이 경기장을 군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또 다른 가설로는 로마의 네로 또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개선문, 혹은 하드리아누스 영묘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진행된 복원 작업에서도 연대 측정에 결정적인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 말들이 수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 수도의 경기장에 있었고,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할 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엔리코 단돌로 총독이 이끈 1만 명의 베네치아군이 십자군의 주력이었으며, 베네치아로 운송된 전리품 중에 이 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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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갤리선에 실어 나르기 위해 조각상들은 목 부분에서 잘라냈습니다. 베네치아에 도착한 뒤에는 절단면을 숨기기 위해 장식용 목걸이 모양의 띠를 두르고 다시 연결했습니다.

재질 분석 결과도 흥미롭습니다. 일반적인 골동품 청동은 구리 85%, 주석 10%에 소량의 납과 불순물로 구성되지만, 이 말들은 구리 약 98%, 주석 1%, 납 1%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로마 제국 시대에 특히 널리 사용된 제련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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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높이 2.33m, 길이 2.53m, 무게 900kg에 달합니다. 표면은 수은 아말감법으로 금도금한 뒤 끌로 일정한 폭의 평행 줄무늬를 새겨, 햇빛을 반사할 때 황금빛으로 빛나도록 했습니다. 투구와 고삐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로마 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1205년에 사망해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에 안장된 단돌로 총독이 말들을 베네치아로 보낸 지 약 50년 후, 이 조각상들은 산 마르코 대성당 갤러리에 설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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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79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무너뜨리면서 프랑스군은 예술품과 보석, 갑옷 등 도시의 보물을 약탈했습니다. 금을 회수하기 위해 해체된 장식물과 함께 약 3만 점의 예술 작품이 팔려 나가거나 행방불명되었고, 프랑스로 실려간 작품 중에는 산 마르코의 사자상과 4마리의 황금말도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처음에 말들을 앵발리드에 배치했다가, 이후 튀일리 궁전의 성문으로 옮겼습니다. 1806년에는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 4마리의 말을 올릴 카루젤 개선문(Arc de Triomphe du Carrousel)을 건설하도록 명령합니다.

고대 청동 사두마차의 유일한 생존자,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  황금말 의 2000년 역사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뒤인 1815년, 오스트리아 황제의 주도로 사자상과 말들이 마침내 베네치아로 반환되었습니다. 다만 사자상은 앵발리드 에스플러네이드에서 철거되는 과정에서 파손되었습니다. 오늘날 파리 카루젤 개선문 위의 말은 원본의 복제품입니다.

베네치아로 돌아온 말들은 다시 산 마르코 대성당 갤러리에 설치되어 1981년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단, 두 차례의 예외가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이탈리아 북부의 다른 보물들과 함께 로마로 옮겨져 잠시 산탄젤로 성에 보관되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영묘(현 산탄젤로 성) 출신이라는 가설을 감안하면 묘한 인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파도바 근처의 프라글리아(Praglia) 수도원으로 피신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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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의 대기 오염으로 인한 부식이 심해지면서, 오늘날 광장에서 보이는 것은 복제품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진품은 대성당 내부에 보관되어 있으며, 대성당 박물관에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고전 고대의 청동 사두마차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이 말들은 그 어떤 조각상보다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