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 해적, 전사… 역사책은 늘 바이킹을 스칸디나비아에서 배를 타고 나아가 유럽 전역과 그 너머까지 약탈과 습격을 일삼던 포식자로 그려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럽과 그린란드 곳곳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굴된 400구 이상의 바이킹 유골에 대한 DNA 염기서열 분석이 역사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결과를 내놓고 있습니다.
DNA 분석이 밝혀낸 핵심 사실
-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바이킹 묘지에서 발견된 유골은 사실 현지인으로, 바이킹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바이킹처럼 매장된 사람들이었습니다.
- 많은 바이킹이 금발이 아니라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바이킹 정체성은 스칸디나비아 혈통을 가진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바이킹 시대 이전부터 스칸디나비아의 유전적 구성은 아시아와 남유럽에서 들어온 외래 유전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 영국 인구는 바이킹이 남긴 유전적 유산으로 최대 6%의 바이킹 DNA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020년 9월 16일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이 6년간의 연구 프로젝트는 현대 사회가 가진 바이킹 이미지를 뒤집었습니다. 연구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 펠로우이자 코펜하겐대학교 룬드벡 재단 지오제네틱스 센터 소장인 에스케 윌러슬레프(Eske Willerslev) 교수가 이끌었습니다.
윌러슬레프 교수는 "우리는 서로 어울리고 무역하며 약탈을 벌여 유럽 전역의 왕들과 싸우는, 잘 연결된 바이킹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TV에서 보고 책에서 읽는 것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우리는 처음으로 그런 세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며 "이 연구는 누가 진정한 바이킹이었는지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남유럽과 아시아에서 스칸디나비아로 이루어진 대규모 유전자 흐름이 바이킹 시대 이전과 도중에 일어났다는 것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바이킹'의 어원과 바이킹 시대
'바이킹(viking)'이라는 단어는 '해적'을 뜻하는 스칸디나비아어 vikingr에서 유래했습니다. '바이킹 시대'는 일반적으로 기록상 첫 약탈이 있은 지 몇 년 후인 서기 800년경부터, 1066년 노르만 정복 몇 년 전인 1050년경까지를 가리킵니다.
바이킹은 유럽과 그 너머의 정치적·유전적 흐름을 바꿔 놓았습니다. 크누트 대왕(Cnut the Great)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고, 레이프 에릭손(Leif Eriksson)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서 북아메리카에 도달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여겨지며, 올라프 트리그바손(Olaf Tryggvason)은 노르웨이에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로 꼽힙니다. 수많은 원정에 유럽 해안 정착지의 수도원과 도시에 대한 약탈이 포함되었지만, 모피·엄니·물개 기름 같은 상품 거래가 더 현실적인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금발 신화의 붕괴, 그리고 고립된 집단들
윌러슬레프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는 유전적으로 그들이 실제로 어떤 집단이었는지 알지 못했다"며 "스칸디나비아 내 서로 다른 바이킹 집단 간의 유전적 차이를 발견했는데, 이는 이 지역의 바이킹 집단들이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립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번 연구는 금발의 바이킹이라는 현대적 이미지마저 깨뜨렸다. 많은 이들이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스칸디나비아 바깥에서의 유전적 유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국제 학술 팀은 바이킹 묘지에서 발견된 화석화된 치아와 뼈를 통해 바이킹 시대의 남성, 여성, 아동, 영아 442명의 전장 유전체를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에스토니아의 선박 매장 유적에서 나온 유해의 DNA를 분석해 네 명의 바이킹 형제가 같은 날 사망했음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스코틀랜드 오크니의 바이킹 매장지에서 발견된 남성 유골은 검과 각종 바이킹 유품과 함께 매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적으로는 실제 바이킹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세 나라, 세 갈래 항로
흥미롭게도 바이킹 시대에는 '스칸디나비아'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명칭은 훨씬 나중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늘날의 노르웨이 출신 바이킹들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로 항해했고, 오늘날의 덴마크 출신 바이킹들은 잉글랜드로, 오늘날의 스웨덴 출신 바이킹들은 발트 해 국가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나라'의 바이킹들은 유전적으로 섞이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적이었는지, 혹은 다른 설명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코펜하겐대학교 글로브 연구소 진화유전체학 부문 조교수이자 논문의 제1 저자인 아쇼트 마르가랸(Ashot Margaryan) 박사는 "바이킹 유해에 대해 역대 최대 규모의 DNA 분석을 수행해, 그들이 바이킹 시대 이전 고대 유럽인의 유전적 지도에 어떻게 들어맞는지 탐구했다"며 "결과는 놀라웠고, 일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역사적 의문에 답을 주는 동시에 증거가 부족했던 기존 추정들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논문의 주요 저자 중 한 명이자 코펜하겐대학교 지오제네틱스 센터 부교수인 마틴 시코라(Martin Sikora) 교수는 "바이킹이 유전적 혈통에서 스칸디나비아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남유럽과 아시아에서 비롯된 유전적 영향이 그들의 DNA에 나타나는데, 이는 이전에 관찰된 적 없는 것이다. 많은 바이킹이 스칸디나비아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높은 수준의 비(非)스칸디나비아 혈통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유럽 전역을 통한 지속적인 유전자 흐름을 시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픽트족이 된 바이킹들
연구팀의 분석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유전적으로 픽트족(Picts)이었던 이들이 노르스인과 유전적으로 섞이지 않은 채 '바이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픽트족은 후기 철기 시대부터 초기 중세 시대에 걸쳐 오늘날의 스코틀랜드 동부와 북부 지역에 살았던 켈트어 사용 민족입니다.
브리스틀대학교의 주저자 다니엘 로슨(Daniel Lawson) 박사는 "유전적으로 두 명의 영국인 부모를 둔 개인이 바이킹식 매장 형태로 오크니와 노르웨이에서 발견되었다"며 "이는 약탈자들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바이킹 문화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바이킹 시대는 유럽의 정치적·문화적·인구학적 지도를 바꿔 놓았으며, 그 흔적은 오늘날에도 지명, 성씨, 현대인의 유전체에서 여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 뫼스고르드 박물관의 고고학자이자 이 연구에 참여한 쇠렌 신드베크(Søren Sindbæk) 교수는 "스칸디나비아 디아스포라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아시아 초원에 이르기까지 무역망과 정착지를 건설했고, 사상·기술·언어·신앙·관습을 퍼뜨리며 새로운 사회정치 구조를 발전시켰다"며 "중요한 것은, '바이킹' 정체성이 스칸디나비아 혈통을 가진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크니에서 바이킹 검과 함께 바이킹 양식의 무덤에 매장된 두 유골은 오늘날의 아일랜드인과 스코틀랜드인과 유전적으로 유사하며, 연구된 최초의 픽트족 유전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2,000년의 진화를 읽는 바이킹 유전체
코펜하겐대학교 지오제네틱스 센터의 부교수이자 공동 주저자인 페르난도 라시모(Fernando Racimo)는 과거의 복잡한 형질과 자연 선택을 연구하는 데 이 데이터셋이 지닌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유럽 역사의 지난 2,000년 동안 자연 선택 아래에서 변이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바이킹 유전체를 통해 면역, 색소 침착, 신진대사 같은 중요한 형질과 관련된 유전자에 자연 선택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바이킹의 유럽 이동 이전·도중·이후에 걸쳐 어떻게 변화했는지 밝힐 수 있다. 나아가 고대 바이킹의 신체적 외모를 추론해 오늘날의 스칸디나비아인과 비교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바이킹 시대의 유전적 유산은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쉽니다. 영국 인구의 6%가 유전자 속에 바이킹 DNA를 지니고 있으며, 스웨덴에서는 그 비율이 10%에 달합니다.
윌러슬레프 교수는 "이번 결과는 바이킹이 실제로 누구였는지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며 "역사 교과서는 업데이트될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