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 깊은 곳에서 발견된 수수께끼의 잔해
2003년 봄, 노르웨이 기뢰제거함 KNM 튀르(KNM Tyr)호가 어부들의 제보를 받고 북해 페드예(Fedje) 섬 인근 수심 150m 해저에서 5년 동안 찾던 잔해를 발견했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해군(Kriegsmarine)의 잠수함 U-864였다. 이 잠수함은 잠수함 역사상 매우 독특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양쪽 잠수함이 모두 잠수 상태에서 벌어진 전투 중, 다른 잠수함에 의해 격침된 유일한 사례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U-864를 격침시킨 것은 영국의 HMS 벤추러(HMS Venturer)호였다.
IXD2형: 더 멀리, 더 깊이 가기 위한 독일의 야심
U-864는 기존 IX형보다 크기와 성능을 키운 IXD2급 잠수함이었다. IX형이 유럽으로 향하는 연합국의 보급선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 동해안까지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설계된 '원양형'이라면, IXD2형은 전장, 배수량, 속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개량형이었다. 전장 87.58m, 수상 배수량 1,610톤(수중 1,799톤)에 달하는 이 거함은 32척이 진수되었으며, 1943년 9월 계약 취소 전까지 3척이 미완성으로 남았다.

추진 체계는 9기통 디젤 엔진 2기, 순항용 6기통 디젤 엔진 2기, 그리고 수중 항해용 전기 모터 2기로 구성되어 수상 20.8노트, 수중 6.9노트의 속력을 냈다. 최대 잠항 깊이는 200m, 항속 거리는 수중 121해리(수상 12,750해리)였다. 무장은 6기의 어뢰관(선수 4, 선미 2)과 24발의 어뢰, 105mm SK C/32 갑판포, 37mm Flak M42 대공포, 2정의 대공기관총을 갖췄다. 1943년 8월 12일, 코르벳텐카피탄(Korvettenkapitän, 소령) 랄프-라이마르 볼프람(Ralf-Reimar Wolfram) 지휘하에 취역했다.
볼프람과 '작전 카이사르(Operation Caesar)'

1912년 빌헬름스하펜 태생의 볼프람은 IXB형 U-108을 지휘하며 리버티 십(Liberty Ship)인 SS 로버트 그레이 호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린 젊은 장교였다. 그에게 주어진 네 번째 임무는 통상적인 통상파괴전이 아니었다. '작전 카이사르'라는 암호명을 가진, 일본으로 군사 물자를 수송하는 특수 임무였다.
화물은 기폭장치 제조에 필수적인 수은 61톤(용골에 고정된 강철 용기 30개 분량), V-2 로켓 설계도, 제트기 부품, 메서슈미트 사 엔지니어 2명, 그리고 어뢰와 연료 전문가인 일본 군인 2명이었다. 일본은 이탈리아 항복 전 이탈리아로부터 1,400톤의 수은을 구매했으나 자국 내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잠수함 수송을 요청했던 것이다.
연이은 불운과 엔니그마의 배신
1944년 12월 5일 킬(Kiel)을 출항한 U-864는 노르웨이 호르텐(Horten) 기지에서 스노클(공기 흡입관) 수리를, 다시 베르겐(Bergen)으로 향하던 중 좌초 사고로 파르순(Farsund)에서 수리를 받아야 했다. 1945년 1월 5일 베르겐에 도착했으나 공습으로 다시 손상을 입었다. 수리를 마치고 아시아로 향하려던 찰나, 연합군은 독일의 엔니그마(Enigma) 암호를 해독해 볼프람의 임무와 항로를 파악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즉시 V급 잠수함 HMS 벤추러호를 급파했다.

작은 거인, HMS 벤추러와 지미 론더스

벤추러는 U-864보다 훨씬 작은 V급 잠수함(전장 62.33m, 수상 545톤/수중 740톤)이었다. 속력(수상 11.25노트, 수중 10노트)과 무장(어뢰관 4문, 어뢰 8발) 모두 열세였지만, V급의 특기 중 하나가 '잠수함 사냥'이었다. 지휘관은 26세의 젊은 지미 론더스(Jimmy Launders) 중령.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해군 천재'로 불리던 그는 지난 1년간 적함 13척(잠수함 1척 포함)을 격침시킨 베테랑이었다. 그는 스코틀랜드 레러윅(Lerwick)에서 출항해 스칸디나비아 반도 인근에서 ASDIC(초음파 탐지기)을 끄고 수동 소나(하이드로폰)만으로 은밀히 접근하는 대담한 전술을 구사했다.
운명의 대결: 수중에서의 수학적 승부
U-864는 또다시 엔진에서 리드미컬한 소음이 발생해 볼프람이 베르겐으로 회항을 결정한 상황이었다. 벤추러의 음탐병은 이 이상한 소음을 처음에는 어선으로 오인했으나, 론더스의 직감으로 잠망경 탐색을 실시했고 U-864의 스노클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론더스는 일단 추적하며 적의 부상을 기다렸으나, 볼프람은 벤추러의 존재를 눈치채고 수중 지그재그 기동으로 회피를 시도했다. 3시간의 추적 끝에 적이 도망칠 위험이 커지자 론더스는 승부수를 띄웠다. 수중에서 기동하는 표적을 향해 직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그는 적의 기동 패턴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미래의 위치를 예측했다. 그리고 4발의 어뢰를 서로 다른 깊이에 17.5초 간격으로 발사하는 '확산 사격'을 감행했다.

첫 3발은 빗나갔지만, 폭발음을 들은 U-864가 급심도 회피 기동을 취하는 순간, 그 궤적 속으로 마지막 1발이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어뢰는 선체를 양단하며 U-864를 순식간에 수장시켰다. 승조원 73명 전원 사망,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격침 위치는 베르겐에서 불과 31해리(약 57km) 떨어진 곳이었다. 론더스는 이 공로로 수훈십자장(Distinguished Service Order)을 수여받았으며, '양쪽 모두 잠수 상태에서의 유일한 잠수함 격침'이라는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기록을 세웠다. 그는 1974년 해군에서 예편했고 1988년 생을 마감했다.
에필로그: 16만 톤의 콘크리트 무덤
노르웨이 해군이 잔해 수색에 나선 건 U-864의 위험한 화물 때문이었다. 초기에 우라늄 산화물(또 다른 독일 잠수함 U-234가 일본으로 수송하려다 항복한 화물)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수은이었다. 수은은 강력한 신경독성 물질로 해양 생태계에 치명적이다. 조사 결과 강철 용기는 부식되어 연간 약 4kg의 수은이 누출되고 있었고, 해당 해역은 어업이 금지됐다.
인양은 잔존 어뢰 4발의 폭발 위험과 수은 대량 유출 우려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랜 논의 끝에 노르웨이 당국은 2017년, 잔해 위에 모래와 콘크리트를 12m 두께로 덮는 '영구 봉인' 방식을 선택했다. 오늘날 U-864는 16만 톤의 콘크리트 아래, 거대한 해저 무덤 속에서 영원히 잠들어 있다.
참고 문헌
The deadly trade. The complete history of submarine warfare from Archimedes to the present (Ian Ballantyne) / Code name Caesar. The secret hunt for U-Boat 864 during World War II (Jerome Preisler and Kenneth Sewell) / The mystery of U-33. Hitler's secret envoy (Nigel Graddon) / U-864-"Operation Caesar" (Deutsches U-Boot Museum) / Aboard his submarine, Jimmy Launders sank Ralf-Reimar Wolfram’s U-boat (Sebastien Roblin in War Is Boring)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