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선사시대 장인의 구리 도구 제작과 네안데르탈인의 장례 의식

장인들이 구리 도구를 만들다 (기원전 5000년경 – 중동)

혁신적인 새로운 제련 기술의 등장으로 공동체들은 구리로 만든 도구와 무기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획기적인 공정은 금속 광석을 함유한 뜨겁게 달군 암석에서 구리를 추출하는 방법으로, 인류가 처음으로 돌이 아닌 금속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구리는 무르고 가공이 쉬워 망치로 두드려 낫, 끌, 칼날, 장식품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었다. 비록 청동이나 철만큼 단단하지는 않았지만, 구리 도구의 등장은 기술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전문적인 금속 세공 장인이라는 새로운 직업 집단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했다.

장례 의식

이라크의 샤니다르 동굴에서는 한 남자가 선명한 색의 꽃 화환과 짙은 향기 속에 안장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한 청년이 돌도구와 동물 뼈가 곁에 놓인 채 무덤으로 내려갔다. 프랑스 라페라시의 바위 그늘 유적에서는 남성 한 명, 여성 한 명, 두 아이, 그리고 갓 태어난 신생아까지 작은 묘지에 함께 잠들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한 아이가 머리 주변으로 염소 뿔을 땅에 원형으로 박아 넣은 채 매장되었다.

이러한 매장이 공동체에서 특별히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인물들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띈다. 남성은 음식, 도구 또는 기타 부장품과 함께 묻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에게는 이와 같은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는 점이다.

죽음에 대한 경의의 차이

모든 네안데르탈인 공동체가 죽은 이에게 같은 경의를 표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북유고슬라비아 지방(현재 크로아티아)의 크라피나 유적에서는 으깨진 인골이 동물 뼈와 함께 아무런 매장 조치 없이 땅에 내던져져 있었고, 일부 뼈에는 도구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흠집이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식인 풍습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나, 아직 확실하게 입증된 바는 없다.

선사시대

문자가 없던 시대의 이야기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전해진다. 화려한 꽃잎에 덮인 무덤에서부터 훗날 문명의 기반이 될 구리 제련 기술까지, 이 시대의 흔적들은 인류가 이미 죽음을 애도하고 자연을 활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