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텔레비전의 역사: 발명의 결정체에서 대중 매체로

텔레비전의 탄생은 전기 신호를 수신하고 이를 영상으로 변환하는 여러 발명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공식적인 첫 시연은 1926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가 런던 영국 아카데미에서 과학자들을 앞에 두고 기계식 텔레비전을 선보인 것입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필로 테일러 판스워스(Philo Taylor Farnsworth)가 1927년 음극선관(브라운관)을 통해 영상을 전송하는 장치를 시연했습니다.

텔레비전의 진화

사진과 영화처럼 텔레비전도 여러 발명이 하나로 모여 완성된 결과물입니다. 라디오, 전화, 전기의 등장은 과학자들에게 소리가 실린 전파를 통해 영상을 전송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다면 텔레비전의 탄생을 이끈 개척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존 로지 베어드 (1888~1946)

스코틀랜드 출신 엔지니어 존 로지 베어드는 전파를 통해 영상을 전송하는 방법을 연구한 초기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오랜 연구 끝에 그는 1926년 런던 영국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장치를 시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텔레비전의 역사: 발명의 결정체에서 대중 매체로

베어드의 기계식 텔레비전은 BBC에 채택되어 최초로 사용된 방송 시스템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는 컬러 방송 송출에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1937년 BBC는 마르코니-EMI(Marconi-EMI) 사가 개발한 기술로 방식을 전환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은 베어드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오늘날 텔레비전 역사에서 그의 이름이 상대적으로 잊히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필로 테일러 판스워스 (1906~1971)

미국인 필로 테일러 판스워스는 음극선관 연구와 제작을 활용해 전자 방식으로 영상을 전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텔레비전의 역사: 발명의 결정체에서 대중 매체로

그의 발명품은 1927년 성공적으로 시험되었으며, 판스워스는 1930년대 내내 과학 박람회에서 작동 원리를 공개했습니다. 이후 RCA와 필코(Philco) 같은 업계 대형 기업들과의 갈등 끝에, 그는 1938년부터 1951년까지 자신만의 텔레비전·라디오 회사를 운영하게 됩니다.

에른스트 알렉산더슨 (1878~1975)

스웨덴 출신 엔지니어 에른스트 알렉산더슨(Ernst Alexanderson)은 기계식 텔레비전 연구에 참여했지만, 이 방식이 실용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다른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케이블 없이 영상을 전송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텔레비전의 역사: 발명의 결정체에서 대중 매체로

알렉산더슨은 1928년 1월 13일 뉴욕 프로크터스 극장(Proctors Theater)에서 자신의 텔레비전을 공개 시연했습니다. 당시 이 TV의 해상도는 24라인에 불과했는데, 참고로 현재 UHD TV의 해상도는 2160라인입니다.

그 외에도 텔레비전 발명에 기여한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러시아 엔지니어 블라디미르 즈보리킨(Vladimir Zworykin, 1888~1982)
  • 독일 엔지니어 클라우스 란츠베르크(Klaus Landsberg, 1916~1956)
  • 폴란드 발명가 파울 율리우스 고트리프 닙코프(Paul Julius Gottlieb Nipkow, 1860~1940)
  • 프랑스 엔지니어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 1857~1923)

텔레비전의 대중화

오랫동안 텔레비전은 가격이 너무 비싸 부유층만 누릴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실제로 1930년대 영국에서는 약 3천 명 정도만 텔레비전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1934년 독일의 텔레풍켄(Telefunken) 사가 음극선관 방식의 텔레비전 생산을 시작했고, 2년 후인 1936년에는 베를린 올림픽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텔레비전 연구와 생산은 잠시 멈추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야 가격이 내려가고 방송 채널이 늘어나면서 거의 모든 계층이 텔레비전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가정에 최소 한 대의 TV가 놓여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의 텔레비전

텔레비전은 TV 뉴스를 비롯해 공개방송, 어린이 프로그램, 드라마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효율적인 정보 전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뉴스와 오락을 전달하는 동시에 TV는 수많은 광고로 가득 차 있는데, 광고는 텔레비전의 주요 재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시청자에게 무절제한 소비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반면 일부 프로그램은 중요도가 낮은 정보로 시청자를 포화시키는데, 이는 결국 수익 창출과 높은 시청률 확보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주목할 점은 텔레비전이 여론 형성자(opinion maker)로 작동하며 행동 양식과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텔레비전은 정보뿐 아니라 생각과 가치관도 함께 전달하는 매체입니다.

브라질의 텔레비전 역사

브라질 텔레비전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언론인이자 기업가인 아시스 샤테브리앙(Assis Chateaubriand)이 상파울루에서 최초의 브라질 방송국인 투피 TV(TV Tupi, 채널 3)를 개국한 것입니다.

샤테브리앙은 미국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라디오와 신문 사업에서 축적한 자본과 노하우를 영상 산업에 투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텔레비전의 역사: 발명의 결정체에서 대중 매체로

당시에는 위성 전송이 없었기 때문에 투피 TV의 편성은 상파울루 지역에 국한되었지만, 다음 해에는 리우데자네이루로 방송 구역을 넓혔습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이 매체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텔레비전은 널리 보급되어 현재 브라질 가구의 90% 이상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후에는 글로부(Globo), 헤코르드(Record), 컬투라(Cultura), 반데이란치스(Bandeirantes), 만셰치 TV(TV Manchete), SBT 등 다른 브라질 방송국들이 잇달아 설립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 세계 최초의 공영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나치 정권 시기에 만들어진 독일의 '페른제젠더 파울 닙코프(Fernsehsender Paul Nipkow)'로, 1935년부터 1944년까지 운영되었습니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은 역사상 최대급 시청률을 기록하며 약 11억 명의 시청자를 모았습니다.
  • 텔레비전에는 여러 기념일이 있습니다. 8월 11일(수호성녀 성 클라라의 날), 9월 18일(전국 텔레비전의 날), 그리고 11월 21일(세계 텔레비전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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